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정보기관의 무차별적인 도청을 따끔하게 꼬집은 동영상(사진)을 제작하고 직접 출연까지 해 화제가 되고 있다. 반 총장은 이 동영상을 18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행사에서 공개했다. 이날 저녁 행사가 시작되자 연단에 오른 반 총장은 기자단은 물론이고 특별 손님으로 온 영화배우 마이클 더글러스, 유명 가수 스티비 원더를 향해 감사 인사를 한 뒤 “올해 유엔과 유엔 사무총장은 도청을 당했다”며 바로 이 동영상을 틀었다.
동영상은 도청을 당하는 것을 모르는 반 총장이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반 총장은 일하면서 약속돼 있는 가수 스티비 원더를 만나기 전에 흥에 겨워 가볍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반 총장이 춤을 추면서 “나는 역사상 ‘가장 열심히 일하는(hardest working·하디스트 워킹)’ 사무총장이 될 거야”라고 혼잣말로 다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엿듣던 정보 요원들이 이를 올해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트워킹(twerking·엉덩이춤)’으로 잘못 알아듣고 ‘반 총장의 목표가 섹시한 엉덩이춤을 추는 것’이라고 보고한다. 각종 언론에 이 내용이 보도된다.
참석한 출입기자단과 특별 손님들은 동영상을 보면서 박장대소했지만 씁쓸함을 지우지는 못했다. 평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거나 드러내기를 꺼리는 반 총장이 ‘불법 도청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미국에 반감을 표시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반 총장은 매년 출입기자단 송년 행사에서 자신이 직접 연출 제작하고 출연하는 동영상을 공개해왔다.
이날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 반 총장은 사건 사고 현장 뉴스를 전해준 기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내년은 유엔에 더욱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다. 유엔의 도움이 필요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언론인들의 시선이 계속 맞춰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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