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호 유고집 ‘눈물’ 출간
빠진 손톱에 골무 끼우고… 빠진 발톱엔 테이프 감고… 얼음 씹으며 집필
“주님, 나를 나의 십자가인 원고지 위에 못 박고 스러지게 해 주소서….”
9월 ‘별들의 고향’으로 떠난 고(故) 최인호 작가(1945∼2013)가 병상에서 남긴 미공개 원고가 공개됐다. 부인 황정숙 여사가 고인의 방 책 더미 속에서 발견한 원고지 200장 분량의 투병 수기 형식의 글로, 24일 출간된 유고집 ‘눈물’(여백미디어)에 수록됐다. 자신의 생명을 좀먹는 침샘암 세포와 싸움을 벌이면서도 창작의 열정과 치유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작가의 마지막 시간의 기록이다.
일주일 새 체중이 5kg이나 줄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삼키고도 2시간마다 잠에서 깨는 불면의 밤, 손톱 밑에서 진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 중에도 성모 마리아에게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고인은 글에서 종교에 기대어 자신에게 드리운 불행을 축제로 승화하고자 했던 바람도 나타냈다. “암을 선고받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앓고, 가톨릭 신자로서 절망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 가톨릭 신자로서 희망을 갖는 혹독한 할례 의식을 치렀습니다. 나는 이 의식을 ‘고통의 축제’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2010년 침샘암 재발 후 쓴 글에서는 작가는 절대자를 향해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 죽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한다. 투병 중에 쓴 고인의 마지막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집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은 읽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빠진 오른손 가운데 손톱의 통증을 참기 위해 고무골무를 손가락에 끼우고, 빠진 발톱에는 테이프를 칭칭 감고 구역질이 날 때마다 얼음 조각을 씹으면서 미친 듯이 20매에서 30매 분량의 원고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필했습니다.”
유고집에는 미공개 원고와 함께 과거 가톨릭 신문 등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렸다. 김인중 곽성민 허경엽 신부와 이해인 수녀, 이장호 영화감독, 정호승 시인, 소설가 김홍신 오정희 김연수 등 고인과 막역했던 지인들이 사후에 띄운 편지글도 담겼다.
유고집은 작가의 손녀 정원 양이 할아버지의 생일(10월 17일)에 쓴 일기글로 끝을 맺는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예순여덟 번째 생신이다. 긴 초 여섯 개, 작은 초 여덟 개. 할아버지가 한 번에 촛불을 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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