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잡은지 6개월… ‘남한의 꿈’ 자신있게 연주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3일 03시 00분


두리하나국제학교 탈북학생 16명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 참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 학생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 공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아직은 어윤일 지휘자(오른쪽)의 지휘보다는 악보를 보는 데 신경이 더 쓰이지만 이들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 학생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 공연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아직은 어윤일 지휘자(오른쪽)의 지휘보다는 악보를 보는 데 신경이 더 쓰이지만 이들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완전’ 떨렸어요. 그런데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요.”

오케스트라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로 돌아온 박려령 양(15)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6개월간 바이올린을 지도해 준 선생님들과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은 려령 양은 금세 주위의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얘기하느라 분주한 소녀로 되돌아갔다.

동아일보가 ‘준비해야 하나 된다-통일코리아 프로젝트’ 사업으로 후원해 온 사단법인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이사장 임미정 한세대 교수)’의 탈북청소년 음악교육이 작은 결실을 맺었다. 탈북청소년들의 대안학교인 두리하나국제학교 학생 16명은 11일 서울 여의도동 영산아트홀에서 열린 ‘2014 하모니네이션 페스티벌’에 참가해 4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공연했다.

이들은 일반 가정 학생들, 다문화가정 자녀, 백혈병소아암협회 희망다미 바이올린합주단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연주자 총 146명은 수준별로 새싹, 나무, 정원 팀으로 나눠 공연했다. 두리하나 학생들은 다른 팀과 함께 바이올린 첼로 협주곡인 리틀앙상블 2번, 플루트 곡인 리틀플루트앙상블 2번을 연주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친구들이 배우는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듯했어요.” 새싹 팀으로 연주한 두리하나의 려령 양이 설명한 바이올린 입문 계기다. 그는 처음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활이 부러지면 내 돈을 내고 사야 하나’라고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연습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덧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친구를 배려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지난해 6월 18일 두리하나의 첫 바이올린 수업시간에 불량품 바이올린을 전달받아 눈물을 흘렸던 신유진 양(15)도 이날은 활짝 웃었다. 유진 양은 “첫날엔 속상했지만 지금은 소리도 잘 낼 수 있고 연주도 잘하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6개월간의 바이올린 교육은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의 교육생 모두에게 마찬가지이겠지만 두리하나 학생들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두리하나 대표인 천기원 목사는 “탈북청소년들은 대부분 구석에서 사람 눈을 피하려고 하는 태생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라며 “그러나 이번 음악교육을 통해 숨고 싶어 하던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서, 무대에 올라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신감을 얻었다”라고 뿌듯해했다. 이날 공연장에 오기 직전 ‘KBS 합창대회 프로그램-하모니’에 참가한 두리하나팀은 예선을 통과했다. 바이올린 교육으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방송 무대에도 본격 진출하는 것이다.

두리하나 교육을 담당했던 바이올린 교사 조민정 씨(34·여)에게도 지난 6개월은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는 “첫 수업에선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악보에 색칠까지 하면서 챙겨 보고 어려운 부분도 연주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좋은 연주를 위해 머리를 묶고 살을 빼라는 주문까지도 잘 따라줬다. 자신의 몸처럼 악기를 관리하고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라는 가르침을 잘 따라준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야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보조교사로 활동한 이승주 씨(32·여)는 “강한 성격이던 아이들이 3개월쯤 지난 뒤엔 먼저 연습을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며 “오늘 연주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하나를 위한 음악재단이 개발한 음악교재인 ‘하모니네이션’ 프로그램에 따라 그룹별 교육을 마친 학생들이 모여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 것이다. 2010년 12월 백혈병 소아암을 진단받았지만 치료를 받고 올해 4월경이면 완치될 예정인 희망다미센터 교육생 임승훈 군(15·인헌중)은 “친구들과 함께 공연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음악은 힘든 일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모든 참가자들은 이날 흰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 또는 치마로 색깔을 통일해 옷을 갖춰 입었다. 공연장 대기실에서 연습할 때의 소음이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는 인상은 이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모두 사라졌다. 누가 어려운 가정 출신인지, 누가 부잣집 아들인지, 누가 탈북청소년인지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진정한 ‘하모니’의 세계였다. 후원 문의 02-725-3342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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