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자라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3일 03시 00분


고려인들 자녀 15명 24시간 보육… 국내유일 광주 시설 문닫을 위기

1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어린이집에서 고려인 3, 4세대 아이들이 좁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어린이집에서 고려인 3, 4세대 아이들이 좁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1일 광주 광산구 월곡동의 한 건물. ‘고려인마을 어린이집’이라고 적힌 이곳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 옆의 낡은 나무문을 두드리자 보육교사 김나탈리아 씨(34·여)가 기자를 맞았다. 16m²(약 5평) 정도 되는 좁은 방에서 공부를 하던 아동 10여 명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했다.

그런데 탁자 한구석에서 정니까 양(4)이 울고 있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사흘 전 이곳에 왔다고 했다. 정 양은 부모가 인근 공단에서 일을 해야 해 어린이집에 맡겨진 거였다. 또 다른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전디아 양(5)은 2년 전 아빠가 질병으로 숨진 뒤 최근 엄마(32)가 일하는 광주에 왔다. 둘은 모두 한국말을 할 줄 몰랐다.

2012년 10월 문을 연 이 어린이집은 고려인들의 한국 정착의 꿈이 담긴 곳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려인 3, 4세대 아동을 보육하고 있다. 33m²(약 10평)의 열악한 공간에 공부방, 침실, 주방으로 나눠져 있다. 제대로 된 놀이시설조차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다. 여기서 원생 15명과 보육교사 3명이 하루 종일 생활한다. 출입문을 폐쇄한 건 건물 앞에 왕복 2차로 도로가 있어 아동들이 교통사고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마을 어린이집은 비인가시설이다. 월세 50만 원과 난방비, 식비 등 운영비로 한 달에 40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 아동 15명의 부모가 매달 10만 원씩을 내고 나머지는 사회 각계의 후원을 받고 있지만 어려움이 적지 않다. 신조야 고려인상담소 센터장은 “월세 50만 원도 내기 힘든 상황이다. 운영난이 계속되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고려인들은 2008년부터 광주 광산구에 하나둘 모여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다. 지난해에는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지역아동센터, 상담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시의회는 지난해 고려인 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윤복현 고려인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조례를 제정한 뒤 고려인이 일주일에 20명 이상 광산구에 정착하면서 이제 2000명으로 늘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협동조합은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상담소가 입주할 건물을 구입하기 위한 성금 모금을 추진 중이다. 후원 문의 062-961-1925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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