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강호예요, 송강호.” 영화 한 편으로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두 남자를 눈과 귀로 동시에 만나는 순간. 수화기 너머의 남자는 배우 송강호였고, 기자와 마주한 남자는 영화 ‘변호인’의 제작자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47)였다. 충무로 대세가 된 그의 삶이 궁금해 지난달 29일 찾아간 자리. 영화로 망한 뒤, 영화와 사랑에 빠진, 영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최 대표는 충무로에서 처음부터 거물이었다. 억대 연봉을 주는 증권사를 나와 창업투자사 무한투자㈜에 입사한 그는 영화 펀드를 추진했다.
“외환위기 직후 정보기술(IT)펀드 붐이 불 때였어요. 하지만 전 영화에 꽂혔어요. ‘은행나무 침대’가 흥행하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거든요.”
영화계 양대 산맥이었던 차승재 제작자와 강우석 감독을 움직여 115억 원을 모았다. 펀드 관리회사로 아이픽처스를 세워 대표를 맡았다. 그때 나이, 서른둘이었다.
2003년은 전성기였다. 그가 투자한 영화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싱글즈’가 잇달아 흥행했다. 순이익만 50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신기루였다. 2004년 상반기 개봉한 ‘고독이 몸부림칠 때’ ‘마지막 늑대’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50억 원을 날렸다. 설상가상으로 모회사의 경영위기가 겹쳤다. 서울 강남의 50평대 아파트에서 경기 구리시의 전세 아파트로 옮겼다.
“이미 정신적으로 무너졌는데,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사기도 당하고. 계속 빚만 늘었죠.”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그를 보고 아내가 한 스님을 만나 보라 권했다. 강원 정선군의 작은 사찰을 찾았다. 절은 수리 중이었다. 그는 스님을 따라 40kg 흙 지게를 짊어지고 산을 올랐다.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일주일 뒤 또 절을 찾았다. 이번엔 40kg 모래 지게를 멨다.
“슬쩍 보니 모래 부대에 물이 묻어 있어요. 무게가 좀 늘었겠다 싶었죠. 짊어지니 생각보다 더 무거워요. 그러다 주저앉았는데 스님은 계속 가라 하고.”
모래 부대를 옮기자마자 최 대표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울먹였지만 울음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울지도 못하는 못난 놈.” 스님의 호통이 떨어졌다. “물 조금 묻은 거 보고 지레 겁먹었지. 할 수 있으면서.” 최 대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긴 울음을 토해냈다.
재기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5년 문구업체 바른손이 아이픽처스를 인수했다. 친분이 있던 바른손 대표는 그에게 영화 사업을 다시 맡겼다. 김지운, 봉준호 같은 걸출한 감독들이 그와 손잡았다.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잃은 게 없더라고요. 영화를 계속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절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최 대표는 2010년 ‘위더스(With Us)’라는 회사를 세우고 영화제작자로 변신했다. 투자 상품으로만 봤던 영화를 자식 키우듯 만들어 보고 싶었다. ‘변호인’은 그가 제작한 세 번째 영화다. 시나리오 선정에서부터 자금 유치, 촬영 진행까지 영화의 모든 것을 챙겼다. 매일같이 촬영장을 챙기는 그에게 하루는 아내가 물었다. “그렇게 좋아요?”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변호인’은 영화를 만드는 행복을 알게 해줬다. 흥행도 따랐다. 개봉 45일 만인 이달 1일 현재 1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몇 달 뒤 극장매출을 집계하고 나면 100억 원 가까이를 손에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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