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투병시 쓴 김종철 시인 … 쾌유시 쓴 형 김종해 시인
‘시인동네’ 봄호에 실려 10일께 발간
지난해 7월 하순, 시인은 아내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았다. 해마다 있는 의례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검진 결과를 본 의사가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시인은 곧 ‘췌장에서 간으로 전이된’ 4기 암을 통고받았다. 여명은 6개월에서 1년 정도라고 했다.
김종철 시인(66·전 문학수첩 대표)은 그날 밤 병실에서 아내와 말없이 한강을 바라봤다. 언제 다시 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교차하는 생의 다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내가 유리창에 어른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인은 대꾸 없이 애써 먼 불빛만 바라봤다.
‘주치의 암 선고 들었던 날 밤/날 보아요 과부상이 아니잖아요/병실 유리창에 얼비친/한강의 두 눈썹 사이에 걸린/남편을 보며/애써 웃어보이던 아내.’(‘언제 울어야 하나’)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을 보는 일, ‘그날’을 후회와 절망, 분노 없이 맞는 일, 암에 걸렸다고 가까운 지인에게 알리는 일, 그 모든 것이 고통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시인은 시를 썼다.
‘이제 어디에서나 이름이 빠진/내가 차례를 기다린다/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생선이/먼저 걸리는 생의 고랑대/몸만 남은 체면이 기도의 바짓가랑이 붙잡고/분노하고 절망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순명하다가.’(‘유작(遺作)으로 남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항암제 따라/죽음의 순례를 시작한 나는/살아 있는 모든 고통은/옷 껴입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암 병동에서’)
일곱 살 터울의 친형 김종해 시인(73·문학세계사 대표)은 난데없이 죽음의 벼랑 끝에 선 아우를 바라보면서 쾌유를 비는 시를 적었다. ‘벌겋게 달궈진 칠월의 폭염도/병실 창 안에서는 하얗게 얼어 있다/일순, 내 앞에서 지진과 함께 세상이 엎어진다/아우여, 이것은 우리가 한여름 밤에/짧게 꾼 황당한 꿈/해는 중천에 떠 있고 갈 길은 멀다.’(‘아직 헤어질 시간이 아니야’)
동생은 일본 도쿄에서 항암치료를 받기로 하고 지난해 8월 짐을 꾸려서 떠났다. 다행스럽게도 병세가 크게 호전됐다. 형은 올 1월 건강을 되찾은 동생과 점심을 같이하면서 안도와 훈기를 가슴에 담는다. ‘6개월 시한부 말기 암환자 아우의 장례식이 있을/그 1월 한낮에/형제는 만나서 함께 밥을 먹는다/아우는 거두절미, 은혜와 기적을 말한다 (중략) 지금 형제는 꿈속에서 만나/꿈을 꾸며 따뜻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따뜻한 점심밥’)
형은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우를 만났을 때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서 “무신론자이지만 하느님께 기도했고 그 마음으로 쾌유를 비는 시를 썼다”고 말했다. 병상에서 일어난 동생은 올해 2월 39대 한국시인협회장에 추대됐다. 꼭 10년 전 형이 34대 회장을 맡았던 자리였다. 형제 시인이 죽음과 우애의 절박감이 담긴 시들은 계간 ‘시인동네’ 봄호에 실려 10일경 발간된다. 동생은 “아직 형의 시를 보지 못했다. 뭐라고 쓰셨더냐”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껄껄 웃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