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1일 새벽. 다급한 목소리가 텐트를 두드렸다. 김창호 대장(45)은 한걸음에 달려 나갔다. 하루 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을 함께 밟은 후배(고 서성호 대원·당시 34)는 텐트 벽면에 비스듬히 기대 있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잡았는데 싸늘했다. 바닥에 눕히고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인공호흡도 여러 번 했다. 2시간 정도 흘렀을까. 서 대원의 얼굴은 여전히 싸늘했다. 김 대장은 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호가 입고 있던 우모복의 지퍼를 올려야 했어요. 운구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그걸 올리면 이제 성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013년 5월 20일, 김창호 대장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히말라야의 8000m 이상 봉우리 14좌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오르는(7년10개월6일) 위업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한국 산악사를 길이 빛낼 영광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14개 고봉 중 12좌를 함께 오른 최고의 등반 파트너이자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산악인, 서성호 대원이 정상 등정 후 휴식을 취하다 사망했다. 영광은 하루도 안 돼 슬픔으로 변했다. 무리한 등정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작년 5월 이후 어떻게 지냈나.
“한동안 멍하니 지냈다. 가을쯤부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지난 연말에 ‘서성호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올 2월에 2014년 1차 총회를 가졌다. 성호를 주인공으로 산악인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몬순’ 제작에도 참여했다. 성호를 기리는 사업을 하면서 다른 등반을 준비했다.”
―서 대원의 사망을 두고 말이 많았다. 특히 정상 등정 후 탈진 상태로 캠프(8050m)로 내려온 그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성호의 죽음 이후 수백 번 수천 번 되뇌어 봤다, 내가 대장으로서 역할을 다했는지를. 성호의 목표는 나와 같은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었다. 탈진 상태에서도 성호는 산소마스크를 쓰라는 권유를 여러 차례 거절했다. 내가 억지로 씌울 수는 없었다. 그건 성호의 도전을 상처 내는 일이었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서 대원은 2013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기 전인 2006년 이미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지난해 등반의 목표는 ‘무산소 등정’ 기록을 세우고 자신의 우상이었던 김 대장을 돕는 것이었다.
김 대장은 “성호는 2007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산 등반을 하지 못했다”며 “그때 나와 함께 K2(8611m)와 브로드피크(8047m)를 올랐다면, 세계 최단 기간 14좌 완등, 세계 최연소 14좌 완등의 영광은 모두 성호 차지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청년이었어요.”
서 대원은 히말라야에서도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두와 어울리곤 했다. 그런 그의 죽음에 현지인들과 외국 등반대도 모두 망연자실했다.
언제나 함께일 것 같았던 후배의 죽음을 옆에서 본 김 대장. 그는 “실제로 산에 갈 때마다 삶의 길과 죽음의 길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을 때도 죽음이 바로 코앞에 있음을 느꼈다. 그런 느낌을 받고 나서는 더이상 고산 등반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김 대장은 아니다. 산에 대한 그의 태도와 생각은 이전에 비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좋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제는 아끼던 후배를 항상 가슴에 품고 다닌다.
김 대장은 아직도 아무도 가지 않은 이름 없는 산을 보면 설렌다. 앞으로도 그런 산을 자신이 직접 가거나 후배들이 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6일 중국 쓰촨(四川) 성으로 떠난다. 대만산악협회가 국가 차원에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나설 계획인데 김 대장에게 고문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김 대장은 쓰촨 성 고산 지대에서 대만 산악인에게 등반 기술을 전수할 예정이다.
지난해 영결식 때 서 대원의 어머니가 김 대장에게 물었다. “또 산에 갈 건가?” 죄송스러운 마음에 그는 고개만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그때 서 대원의 어머니가 조용히 읊조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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