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를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던 서도(西道)소리 배뱅잇굿 명인 이은관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이 12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고인은 다음 달 25일에도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배뱅잇굿을 공연할 계획이었다. 제자인 박정욱 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밥을 사주셨는데,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고 앓으시더니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배뱅잇굿을 시작한 뒤 8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라 배뱅잇굿과 서도잡가를 부르며 “얼굴도 모르는 배뱅이가 평생 나를 먹여 살렸으니 고맙기만 하다”는 말을 남겼다.
고인은 1917년 강원도 이천(현재 북한)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거들면서 박춘재 이진봉 박부용 같은 당대 소리꾼의 노래를 유성기로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1936년부터 황해도 황주의 이인수 명창에게 배뱅잇굿과 서도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웠고 24세때 철원에서 열린 전국 신인남녀 콩쿠르에서 ‘사설난봉가’와 ‘창부타령’을 불러 우승했다. 이후 서울로 가 유랑극단에서 활동하며 높고 고운 소리, 구성진 창법으로 명성을 쌓았다.
배뱅잇굿은 상사병을 앓다 숨진 배뱅이 이야기를 장구 반주에 맞춰 서도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다. 고인은 1957년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한 뒤 일약 스타가 됐다. 당시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6만 장이나 팔렸다.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가…”라는 대목은 1960년대 인기 코미디언 남보원 씨의 흉내로 유행어가 됐다.
배뱅잇굿의 해학을 한껏 살려 요즘으로 치면 ‘국악판 개그 콘서트’를 선보였고, 장구를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기차소리, 바람소리를 내는 개인기도 뽐냈다. 청중을 휘어잡았던 그는 1950, 60년대의 인기 연예인이었지만 당시 무형문화재 심사위원들이 “소리에 재담이나 섞고 점잖지 못하다”면서 냉대해 1984년에야 뒤늦게 서도소리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고인은 생전에 서울 황학동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 영천시장 근처 5층 건물 옥상에 자리 잡은 ‘이은관 민요교실’로 출근했다. 50곡이 넘는 신민요를 작곡하면서 틈틈이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인간문화재라고 다른 걸 부르면 말이 많은데 백 살까지 살면 떳떳하게 신민요를 부르겠다”고 했으나 백 살을 채우진 못했다. 1990년 보관문화훈장을, 2002년 방일영국악상을 받았으며,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지냈다.
유족은 아들 승주, 딸 옥분 옥금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4일 오전 9시. 02-2290-94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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