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김영식 작가가 망우리공원 박인환 시인의 무덤 앞에서 시인의 인생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달에 한 번 무료 설명투어를 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그럼 우리 망우리공원에서 만납시다.”
‘한 번 만나자’는 말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약속 장소는 그 흔한 커피숍이 아니었다. 김영식 작가(52)가 지정한 곳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공원’. 1933년부터 1973년 폐장될 때까지 40년 동안 공동묘지로 쓰인 공원이다. ‘근심을 잊는다(忘憂)’란 좋은 뜻의 이름이건만, 왠지 기분이 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한 까닭을 15일 만남에서 알 수 있었다. 김 작가는 “공동묘지라는 이미지 때문에 편견을 갖기 쉬운데, 이곳에 묻힌 분들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해 12월 그는 서울연구원의 스토리텔러 대상을 받았다. 주목받지 못했던 서울의 이야깃거리를 발굴해 낸 사람에게 주는 상. 그는 2009년 출간한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비명으로 읽는 근현대인물사’에서 망우리공원에 묻힌 인물들을 조명한 바 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상을 타게 된 것이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의 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다음 달 초 서울 관련 이야기를 담아 처음으로 책을 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프로젝트에는 9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김 작가는 그중 한 명이다.
김 작가가 ‘망우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우연히 망우산을 산책하다 죽산 조봉암 선생의 묘비를 보았다. 그는 1959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형됐다. 50년이 지났지만 묘비 앞면에 ‘죽산조봉암선생지묘’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다. 따로 비문은 없었다.
또 다른 무덤을 봤다. 묘비에는 검은 페인트로 ‘아버님 잠드신 곳’이라는 글자가 ‘조악하게’ 씌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비문을 새기지 못한 것일까. 문득 사연이 많은 무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망우리에 ‘헌신’한 것은 수필가로 등단한 2002년 이후다. 독립운동가 안창호 한용운, 화가 이중섭 등 관리사무소가 파악한 인물은 고작 15명에 불과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역일지도 모르는 나머지 무덤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다.
“생계 때문에 주말에만 산속을 헤매고 다녔지요. 유족들을 찾아 다녔어요. 어떤 사람은 저더러 미쳤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귀신한테 홀린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돌았죠. 그래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에 걸쳐 어느 무덤에 누가 묻혔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20여 명의 근현대 인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2009년 마침내 ‘묘지도’를 완성했다.
이 가운데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오른팔이었던 독립운동가 박찬익 선생도 있었다. 박 선생의 경우 묘비만 덩그러니 있었고,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아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 선생은 임시정부에서 활약했고 1949년 임종 당시 “조용히 흙에 들어가겠다(無聲入土)”며 “서민의 묘소인 망우리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를 비롯해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한 명인 박희도 선생, 방정환 선생의 뒤를 잇는 아동문학가 최신복 선생, 극작가 함세덕 등이 그가 발굴해 낸 인물이다. 현재 2만8500여 기의 무덤 중 상당수는 이장되고 8415기만 남았다. 그는 5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망우리공원 묘비 투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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