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휠체어 의지해도… 내 마지막 임무,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최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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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
미수기념 ‘한일연구 50년’ 강연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가운데)이 한일관계 연구 50년을 회고하는 미수기념 특별강연을 한 뒤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은 김우식 전 부총리, 오른쪽은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가운데)이 한일관계 연구 50년을 회고하는 미수기념 특별강연을 한 뒤 건배를 하고 있다. 왼쪽은 김우식 전 부총리, 오른쪽은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어느 무인도에 표류했는데, 스스로 등진 고국과 관련된 중요한 사료가 그 섬에 그득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며 외로움을 뒤로하고 사료를 읽을 것인가, 아니면 구조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기 위해 끼니를 때우는 일에만 골몰할 것인가.

1957년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피해 일본으로 피신한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의 선택은 전자였다. “일본인보다 한국을 더 모르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다. ‘특별체류허가’라는 신분의 불안을 누르고 그는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파묻혀 한국관계사료를 읽고 또 읽었다. 한일관계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는 말은 그렇게 태동했다. 그는 10년 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흥분의 시간들이었다. 지구상에서 나 혼자만 역사의 진실을 접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회고했다.

그가 4일 서울 광화문 S타워에서 한일관계연구 50년을 회고하는 특별강연을 했다. 한일포럼과 동서대일본연구센터가 그의 미수(米壽·88세)를 기념해 마련한 자리였다. 강연을 들으며 그의 주변에 후학과 지인이 많은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직접 말한 것은 없다. 다만 그가 소개한 일화 등을 통해 유추해볼 뿐이다.

첫째, 그는 근거를 댄다. 날짜, 이름, 관계, 발언 등을 정확히 소개하고 해석은 최소한으로 한다. 그가 안중근 의사와 독도 연구의 디테일에서 독보적인 것도 이런 정직함과 권위 때문이다.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 발굴과 이봉창 의사 재판기록 공개, 1969년 도쿄에 한국연구원과 1988년 서울에 국제한국연구원을 세운 것도 공적의 하나다.

둘째, 그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다. 한국에만 유리한, 또는 일본에 불리한 자료만 중시하지 않는다. 독도 영유권만 해도 ‘한국이 유리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안중근 의사는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고도 분명히 말한다. 대일외교는 어른스럽게 해야 한다는 주문도 빼놓지 않는다. 일관된 주장이기에 울림이 있다.

셋째,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휠체어를 타고 관련 학회나 세미나 등을 꾸준히 찾아다닌다. 코멘트를 할 때는 최근의 연구 성과도 언급함으로써 옛 연구에 현실의 옷을 입힌다. 참석자들은 지식과 함께 시사를 얻어간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머가 있다. 이날도 자신이 일본으로 밀항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 “미군 비행기를 타고 갔으니 ‘밀항’이 아니라 ‘공항’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 “내가 자주 가던 일본의 한국 술집 여주인이 내빈으로 온 게 제일 기쁘다”고 말한다. 자신을 ‘막후 실력자’라고 하면 “막을 치고 일한 적이 없다”며 웃어넘긴다.

그러나 그의 오늘은 무엇보다 학자로 일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강연에서도 일부 소개했지만 그는 김구 선생, 장면 박사,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 일본의 기시 노부스케, 오히라 마사요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등과 깊이 알고 지냈다. 이런 관계를 활용해 김대중 씨가 일본에서 납치됐을 때와 7·4남북공동성명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아 한일관계가 악화됐을 때 이를 무마하는 데 일조했다. 일본의 정계 상황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한국에 전달했으며, 포항제철 건설 등에 일본이 지원하도록 도운 일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는 정계나 공직 진출 권유, 금전적 유혹을 모두 뿌리쳤다. 그의 이력에 이렇다 할 공직 경험이나 스캔들이 없는 이유다. 그를 ‘괴물’이라고 경외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리사욕을 채웠다면 그는 ‘요물’로 끝났을 것이다.

그는 강연 말미에 당일 독도를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한 일본의 소학교 사회교과서가 공개된 것을 두고 “한국이 아니라 (잘못된 사실을 배운다는 점에서) 일본을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일본 비판은 ‘세다’ ‘약하다’는 평가보다는 ‘아프다’는 표현이 어울릴 때가 많다.

강연회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승윤 김우식 전 부총리,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유명환 김성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병세 외교부 장관,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 김우전 전 광복회장,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 오코노기 마사오 전 게이오대 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참석자들은 이날 그의 필생의 업인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의 성공을 기원했다. 아직 건강하다고는 하나 그의 나이 벌써 88세. 그가 수집한 자료 20여만 점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의 연구 태도를 이어받을 후학이 있는지가 더 걱정이 된 강연회이기도 했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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