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스케이트를 처음 탔던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스케이팅을 해보고 싶다. 다시 한 번 선수가 되어 오래오래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이규혁 자서전 ‘나는 아직도 금메달을 꿈꾼다’ 중에서)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로 올림픽 6회 출전의 위업을 달성한 스피드스케이팅의 ‘전설’ 이규혁(36)이 평생을 함께했던 스케이트화를 벗었다. 23년 동안 달았던 태극마크도 반납했다. 이규혁은 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각계 인사와 선후배들의 축하를 받으며 정들었던 빙판에 작별을 고했다.
이규혁의 스케이트 인생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세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중학교 3학년인 16세에 1994년 릴레함메르 겨울올림픽에 출전했다. 이후 올해 2월 소치 대회까지 6회 연속 올림픽에 나갔다.
남긴 기록도 화려하다. 1997년 11월 1000m에서 세계기록 2차례, 2001년 3월 1500m에서 세계기록을 1차례 세웠고,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는 4번(2007, 2008, 2010, 2011년)이나 정상에 올랐다. 국내외 대회 레이스 완주 횟수만 592회에 달한다. 그렇지만 매번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히면서도 올림픽 메달과는 한 번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예전에는 올림픽에서 실패하면 늘 슬프다고 생각했다. 메달이 없어 좌절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시간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슬픔이나 아픔이 아닌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록 자신은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그가 뿌린 땀과 눈물은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 소치 올림픽 여자 500m에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이상화(25·서울시청)가 대표적이다. 이규혁은 11세나 어린 이상화와 함께 훈련하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은퇴식에 참석한 이상화는 “어릴 때 오빠가 우상이었다. 같이 스케이트를 타면서 많은 걸 배웠다. 이제 오빠가 같은 빙판에 없다고 생각하니 허전하고 슬픈 마음”이라고 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인 모태범(25)도 이규혁의 훈련 파트너로 시작해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전설을 떠나보내는 이날 행사에는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이에리사 의원(새누리당),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최종삼 태릉선수촌장 등과 이상화, 박승희(화성시청), 이정수(고양시청)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농구선수 출신 서장훈과 김승현 등의 얼굴도 보였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론적으로 공부해서 4년 후 평창 올림픽에서 도움이 될 실력을 갖추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번은 국가대표팀 코치나 감독을 하고 싶다. 아직 느낌이 살아 있을 때 이를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평창에서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고 말했다. 웃음과 눈물이 교차한 은퇴식을 마친 이규혁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나는 부족한 선수였다. 부족한 선수였던 만큼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며 열심히 살겠다”고 말을 맺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