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민중서림 사전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땐,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이 돌았다. 사람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8명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종이를 한 장씩 집어, 글자를 진지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눈동자만 빠르게 움직였다.
그 한쪽에 고명수 민중서림 편집위원(57)의 자리가 있었다. 종이사전을 편집하기 시작한 지 올해로 딱 30년째라고 했다. 그는 각종 사전으로 뒤덮인 책상을 헤치고 한 손에 쏙 잡히는 크기의, 적갈색 사전을 꺼내보였다. 낡아 부스러질 것 같은 모서리는 누런 테이프로 동여매져 있었다. 손때가 묻어있는 사전은 특히 ‘E’부터 ‘H’까지가 유독 까맸다.
“1950년대 국내 첫 영한사전이에요. 영문학자 이양하 권중희 선생이 광복 뒤 집필했지요. 일본어가 아닌, 한국말로 다른 나라의 문물을 바라보게 됐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그가 입사했던 1984년, 종이사전은 전성기로 접어들 때였다. 처음 맡았던 일은 ‘엣센스 한영사전’ 개정작업이었다. 갱지를 가로 8cm, 세로 5cm로 오려서 단어카드를 만들었다. 한 단어를 쓰고, 아래에 그에 맞는 설명을 기록했다. 실제 사전 크기와 같은 1mm짜리 깨알 같은 글자들을 매일 뚫어져라 보는 것이 일과였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는 사전 주문량이 폭주했다. 세 번째 영한사전 개정판 작업을 하던 1993년에는 50명이 달려들어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해야 했을 정도다. 그러나 2000년부터 불어닥친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의 흐름을 종이사전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전 출판사들이 연간 사용료를 받고 포털 사이트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연간 30만 부 이상이 팔리던 엣센스 영한사전은 현재 4만 부 조금 넘게 팔린다. 전반적으로 종이사전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데, 초등학생 아이에게 우리말사전을 사주는 부모들 덕택에 국어사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 편집위원은 “종이사전이 어느 정도 소비가 되어야 신어를 반영한 개정판도 나올 수 있는데, 여건이 어렵다보니 출판사들이 사전부를 없애거나 줄이는 추세”라며 안타까워했다. 단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나 쓰임새를 찾는 작업도 지연된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기존에 나와 있는 낡은 내용만 인터넷에 검색될 가능성도 있다.
그는 “디지털 덕분에 편해졌지만 사람들은 아날로그의 장점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종이사전은 ‘내 것’이고, 그 안에는 ‘내 추억’이 있다는 것이다. 사전 맨 앞장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설렘이 있었다. 외국어 사전을 앞에 두고 ‘이 언어를 독파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사라졌다. 입으로 스펠링을 하나씩 되뇌면서 단어를 찾다보니, 의외로 암기효과도 있었다. 때 묻은 사전에는 자신의 배움의 추억과 설렘이 깃들 수밖에 없다.
사전 하나하나를 자식 자랑하듯이 소개하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손가락으로 짚어가다가 뜻하지 않고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를 접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종이사전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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