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호“靑정책실장된지 두달만에 감사원장될 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MB정권 정책회고록 ‘… 반전’ 펴낸 백용호 前대통령정책실장

백용호 교수는 최근 서울 강변역 부근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하고, 한운재(閑雲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백용호 교수는 최근 서울 강변역 부근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하고, 한운재(閑雲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MB가 대통령이 되고 내가 공직을 맡았을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 중 하나는 '그 시절에 MB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예상했는가?'였다. 내 대답은 단연코 '노'였다. 내가 MB를 찾은 것은 1998년이었고, MB가 대통령이 된 것은 2012년이었다. 무려 14년 후에 대통령이 된 것이다. 내가 예언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14년 후의 일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MB와의 만남은 분명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명박(MB)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대통령 정책실장, 정책특보를 지낸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58)가 최근 발간한 '정책회고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 제목은 '백용호의 반전'(김영사). 백 교수는 7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책회고록에 담긴, 거의 유일한 '비(非) 정책적 회고'라고 할 수 있다"며 웃었다.

그의 '비 정책적 회고담' 중엔 이런 내용도 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MB와 처음 만난 이후) 점심식사를 같이 하곤 했는데 한번은 내가 밥을 약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다 먹었나?'라고 물었다. '네'라고 대답하자 내 밥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가 싹싹 비우는 것이었다. 내가 남긴 밥에는 김칫국물도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백 교수가 MB를 처음 만난 건 10년 동안 재직하던 이화여대 교수 자리를 던지고 19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한 직후. MB는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했고, 백 교수는 바로 옆 서대문 지역의 한나라당 후보였다. 백 교수는 낙선했고, MB는 당선됐다. 낙선한 이후 백 교수의 삶을 바꾸어놓은 책이 바로 MB가 펴낸 '신화는 없다'였다. 1995년에 출간된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백 교수의 기억. "선거가 끝난 후 나는 반(半) 백수였다. 2년 뒤엔 지구당 위원장까지 그만뒀다. 사실 그 무렵이 MB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금배지를 떼야했기 때문이다. 세간에는 '이명박의 신화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나는 어려운 시기에 처한 그의 꿈이 궁금했다. 사실 그의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가 정주영 회장의 일가친척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백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단 한 순간도 국정수뇌부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MB는 대통령 정책실장을 맡은 지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김황식 감사원장 후임얘기까지 꺼낸다. 백 교수가 끝내 고사해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동아일보 '비밀해제 MB 5년' 시리즈, 2013년 12월 7일자 'S라인(서울시 인맥)의 끝' 참조).

MB가 '백용호의 자리'로 생각했던 공직들을 꼽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감사원장. 모두 공평무사한 덕목이 요구되는 자리다.

백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원칙에 대한 나의 소신은 어쩌면 내가 살아온 과정이나 주변 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SKY 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일가친척 중에 특별히 출세한 사람도 없어 사방 천지에 혼자뿐이었던 나에게 줄대기와 청탁은 가장 큰 반칙으로 여겨졌다."

그가 국세청장에 취임한 건 2009년 7월. 국세청은 전임 한상률 청장의 '연임 로비 의혹'으로 만신창이가 돼있었다. 백 청장은 △세무통의 전면 배치 △청탁자 승진 배제 △여성인력 우대를 3대 인사원칙으로 공표하고 실천해나갔다.

납세자보호관이라는 직책을 신설하고, 여성판사 출신으로 아름다운 재단 감사를 지낸 이지수 변호사(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국장으로 앉힌 건, 그의 책 제목 그대로 '백용호의 반전'이었다. 이 국장은 2009년 11월 국세청 사상 최초의 세무조사 중지명령을 내린다. 어떤 개인사업자에 대한 부당한 세무조사를 중지시킨 것인데, 국세청장의 허락도 없이 납세자보호관 단독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백 교수는 "같은 편에게 옐로카드를 내민 격이었다. 조그마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회고했다.

MB 퇴임과 함께 공직에서 물러난 백 교수는 강원도 횡성에 방을 하나 얻어 1년 가까이 칩거하면서 정책회고록을 집필했다. 제일 먼저 MB에게 책을 '증정'했다. 3월부터는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강의도 시작했다.

"역사 공부를 좀 하려고 합니다. 역사는 역시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MB 정부에서 아쉬웠던 점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공직에 있던 기간 내내 아쉬웠던 건 국정홍보처를 없앤 일"이라며 "정부 부처의 대변인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게 바로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