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W메리어트호텔 서울의 총지배인 매슈 쿠퍼 씨(43). 인터뷰 시작 직전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전날 인도에서 두 딸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부인의 연락이었다. 3분 정도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그의 표정은 밝았다. 딸들과 부인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고 사고 처리도 잘됐다고 했다.
2월 말 한국에 온 쿠퍼 씨는 이전 8년간 인도에서 지냈다. 지금도 인도에 있는 그의 가족은 올여름 한국에 올 예정이다. 쿠퍼 씨와 가족은 떨어져 있지만 늘 함께이다. 그는 매일 아침 가족과 통화를 한다. 저녁이면 영상통화로 초등학생인 두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제 역할의 1순위는 아빠, 2순위는 남편, 3순위가 호텔 총지배인입니다.”
쿠퍼 씨는 ‘일과 가정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몸소 실천 중이다. 경영자로서 직원들에게도 조화로운 삶을 요구한다. 그래야 일에도 충실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저녁이 있는 삶’이다. 한국 직장에서는 결코 이루기 쉽지 않은 것이다.
쿠퍼 씨는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직원들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직원들이 퇴근을 안 한 이유는 상사인 그가 아직 사무실에 있어서였다.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는 한국의 문화는 호주 출신인 그에겐 생소했다.
이후 쿠퍼 씨는 직원들에게 “퇴근 시간이 되면 집에 가라”고 틈날 때마다 말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래서 요즘엔 ‘퇴근 시간을 넘겨 남아 있는 사람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중이다.
“세계적인 호텔의 직원들은 대부분 하루 7시간에서 7시간 30분 정도 일합니다. 제 소망은 우리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돼서 세계 어느 호텔에 가서도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하루 8시간 이내로 일하는 것은 회사에도 이득이라는 것이 쿠퍼 씨의 지론이다.
물론 쿠퍼 씨도 알고 있다. 한국 직장인들이 ‘저녁을 빼앗긴 삶’을 사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처럼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한국은 ‘1년 365일, 매일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쿠퍼 씨가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한국과 한국인이 좀 더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여러분의 부모 세대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승진할 수 있다’는 말이 통했겠지요.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가족을 생각하고 삶과 일의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해줘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가족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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