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대학 선배로부터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38)를 소개받고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선배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내게 김 대표를 한 번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예전에 내 밑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직원인데 지금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우아한형제들은 연 매출 100억 원을 넘긴 성공한 벤처기업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너무나 미미했다. 4년 전 김 대표는 친형과 함께 남의 사무실에 책상 하나만 갖다놓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꽤 잘나가는 정보기술(IT) 기업의 웹디자이너 출신이었지만 사업 경력은 보잘것없었다. 딱 한 번 가구 사업에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이 전부였다. 두 번째 창업 아이템으로 선택했다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도 그다지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내 주변만 해도 배달 앱으로 창업을 준비하던 사람이 20∼30명이나 됐다.
김 대표가 만든 ‘배달의민족’은 지금 누적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넘긴 ‘국민 앱’이 됐다. 그렇지만 초창기 프로그램은 키치(의도적으로 통속적인 표현을 추구하는 예술 기법)스러운 디자인 외에는 별 볼 것이 없었다. 김봉진이란 사람은 그야말로 ‘원 오브 뎀’(흔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이런 생각이 바뀐 계기는 김 대표가 서울역에서 연 사업설명회였다. 그는 핵심 파트너가 될 전국의 광고 대행 사업자들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적잖은 돈을 들여 회의실을 빌렸고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그날 난 느지막하게 설명회장에 도착해 김 대표의 발표를 지켜봤다. 그는 배달 앱의 홍보 효과가 얼마나 좋은지를 성심성의껏 설명했다. ‘과연 그게 되겠느냐’는 날선 질문에도 각종 수치를 근거로 제시하며 잘 대처했다. ‘디자이너니까 감각적, 직관적으로 일할 것’이란 예상과 너무나 달랐다. 게다가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이때부터 우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투자를 결정한 건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후였다. 난 김 대표에게 “앞으로 나를 잘 활용하라”고 일렀다. 이후 그는 귀찮을 정도로 자주 연락을 했다. 언론의 인터뷰 제안에 응해야 하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통화를 했고 말로 다 풀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e메일을 주고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멘토로서 조언을 해준 수십 명의 스타트업 경영자 가운데 김 대표만큼 자주 연락을 해온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매사에 치밀했다.
김 대표 주변에는 항상 그를 도와주거나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은 스타트업 대표가 갖춰야 할 최고의 능력 중 하나인데, 그는 이것을 타고난 듯했다. 유능한 인재를 찾고 있던 그에게 대기업에서 일하던 지인을 소개해준 적이 있다. 보통 10명을 소개해주면 실제 그 회사에 합류하는 사람은 2, 3명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김 대표는 8, 9명을 영입했다. 대기업에 비하면 스타트업은 연봉도 낮고 미래도 불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재를 끌어오는 건 오로지 스타트업 대표의 능력이다. 김 대표는 자신의 비전과 인간적인 매력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다.
김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점이다. 대표 직함이 새겨진 명함만 생겨도 우쭐해하는 이가 많은데 나는 그가 어깨에 힘을 주는 걸 보지 못했다. 지금 후배 창업가들을 만나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얼마 전 배달의민족의 TV 광고가 전파를 타기 시작됐다. 이제 대중적인 서비스가 됐다는 뜻이다. 좀 외람된 것 같지만 김 대표를 보면 마치 성공한 자녀를 지켜보는 것처럼 뿌듯하다.
4년 전, 지하철 선릉역 옆 커피숍에서 처음 만난 김 대표는 내게 자신의 비전과 계획을 설명했다. 계산기를 꺼내 이것저것을 계산하더니 3년 후면 매출이 100억 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때 그가 말한 목표는 지금 모두 실현됐다. 이제 김 대표와 우아한형제들은 제2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해온 대로 초심을 잃지 않으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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