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사실주의’ 거장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백년 동안의 고독’ 노벨상 작가 마르케스 별세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DB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DB
1967년 비 오던 어느 날 아르헨티나 출판사인 수다메리카의 편집장은 콜롬비아 태생의 한 무명작가가 멕시코에서 보내온 소설 원고를 읽고 전율했다. 우편료가 없어 일부만 보내왔던 원고의 제목은 ‘백 년 동안의 고독’. 칠레의 국민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는 훗날 이 작가를 ‘1605년 돈키호테를 출간한 미겔 데 세르반테스 이후 최고의 스페인어권 작가’라고 칭송했다.

이 소설로 198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남미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17일 멕시코시티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87세. 유족으로 아내 메르세데스 바르챠와 두 아들 도르리고와 곤살레스가 있다. 추정 사망 원인은 폐렴.

콜롬비아의 작은 해안 마을 아라카타카 출신인 그는 8세까지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탁월한 학업능력으로 보고타국립대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중퇴했다. 첫 소설 ‘낙엽’이 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뒤 신문기자로 일했다. 많은 남미 작가들처럼 젊었을 때부터 뚜렷한 정치성향을 드러내 1955년 공산당에 입당했고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연이어 쏟아냈다. 그의 안전을 걱정한 신문사는 그를 유럽 특파원으로 발령 냈고 그는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1961년 파리에서 멕시코로 이주한 그는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었다. 1928년 고향에서 미국 기업의 사주로 콜롬비아 정부가 바나나농장에서 일하던 자국민 수백 명을 사살하면서 일어난 ‘바나나폭동’의 충격이 모티브였다. 그는 “여유로웠던 인디오의 삶은 사라지고 뜨거운 먼지만 흩날리는 황량한 거리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7대에 걸친 고난을 녹인 ‘백 년 동안의 고독’은 현실과 환상적 세계를 아우르며 고단한 남미 민초의 삶을 조명했다. 이른바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그만의 문학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작품은 1967년 출간 이후 35개국 언어로 번역돼 5000만 부 이상 팔렸다. 이후 카리브 해 독재자의 삶을 다룬 ‘족장의 가을’(1975년)과 젊었을 때 사랑에 실패하고 80세 가까이에 다시 만난 연인 얘기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1985년) 등 36편을 남겼다.

마르케스는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60년 친구다. 함께 미 제국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회주의자였던 그에게 미국은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나의 문학적인 영웅”이라고 칭송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4년 그를 미국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한 이듬해 미국 비자가 발급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그가 타계한 직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세대를 넘어 계속 읽힐 것”이라고 추모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백 년 동안의 고독#노벨 문학상#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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