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집 ‘스키야바시지로’에서의 만찬. 23일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당일 저녁 준비한 회심의 카드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녀간 뒤 25일 점심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 이 초밥집을 찾았으나 직원들은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치적 구설수에 오를까봐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슐랭가이드 별 3개를 받은 식당 가운데 다른 식당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는 곳은 이 집이 유일하다. 카운터에는 자리가 10개뿐이다. 오노 지로(小野二郎) 씨는 “요리사 눈길이 가지 않는 곳에 손님을 모시면 신경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메뉴는 주방장이 추천하는 스페셜 스시(초밥 20개) 단일 품목으로 1인분 가격은 3만 엔(약 30만5000원)부터 시작된다.
오노 씨는 7세 때 전통 요리점을 겸한 여관에 봉공(奉公·남의 가게에 더부살이로 일하다 성인이 돼 독립)으로 맡겨졌다. 뱃사공이던 아버지가 병으로 입원하고 어머니가 기숙공장에 들어가면서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잘리면 굶어죽는 수밖에 없으니 필사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식칼을 잡았고 6학년 때 결혼식 등 연회에 출장 요리를 나갔다.
그는 1951년 도쿄 3대 초밥집 중 하나였던 ‘요시노’에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당시 26세로 다른 문하생보다 많이 늦었지만 갑절로 노력했다.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 스시 쥐는 법을 따라하는 것도 핸디캡이었으나 결국 자신만의 쥐는 법을 개발했다.
오노 씨는 40세가 되던 1965년 요시노 긴자 지점 단골손님이던 건물 주인의 보증으로 자신의 초밥집을 차렸다. 가게 이름 ‘스키야바시지로’는 근처 지명인 스키야바시 교차로의 지로라는 뜻이다.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며 가게 이름에는 발음만 같은 한자, 지로(次郞)를 골랐다.
그는 최고를 지향했다. 생선 종류별로 얼마나 숙성시켜야 할지, 계절별로 어떤 생선을 써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지 연구하고 기록했다. 나중에 이를 10여 권의 책으로 펴냈다. 다랑어 훈제에는 번거로워도 볏짚을 고집했다. 볏짚을 태우고 꺼진 불이 만든 연기가 비린내를 없애고 향을 더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도 30년간 얼음 냉장고를 고수했다. 예전 전기냉장고는 수분을 흡수해 얼리는 방식이어서 생선 질감을 떨어뜨린다고 봤다. 1994년 여름 폭염으로 얼음 수급이 어려워지던 중 습도 조절이 가능한 전기냉장고가 나오자 얼음 냉장고를 울면서 교체했다. 쌀은 해마다 작황을 보고 가장 좋은 산지의 제품을 섞어 쓴다. 같은 산지만 고집하면 최고 품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관리도 철저했다. 창업 때부터 외출할 때는 항상 장갑을 꼈다. 스시 장인에게 ‘손은 생명’이라는 생각에서다. 생선이나 밥 상태를 살필 때 손가락 안쪽의 감각이 중요한 데다 트거나 상처 난 손으로 손님 앞에서 스시를 쥐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지금까지 고집한다. 미각을 잃을까봐 자극이 강한 커피도 입에 대지 않는다.
지금 그의 곁에는 아들 요시카즈(禎一·54) 씨가 있다. 30년 경력이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요즘 아들이 수산시장에서 구해오는 모든 재료를 아버지가 하나하나 맛을 보며 점검한다. 아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다. 오노 씨는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내가 먹어보고 만족할 수 없는 요리는 절대 손님에게 내주면 안 된다. 돈 생각만 하면 장인이 될 수 없다.” :: 오노 지로 ::
1925년 시즈오카(靜岡) 현 하마마쓰(濱松) 시 출생
7세 때부터 요리 전문 여관에서 더부살이
1965년 만 40세에 스키야바시지로 개업
2005년 일본 정부에 의해 ‘현대의 명공’으로 선정
2014년 스키야바시지로, 7년 연속 미슐랭가이드 최고등급 지정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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