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여성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53년에 걸친 내 방송 생활의 유산은 바로 이들입니다.”
미국 유명 여성 앵커 바버라 월터스 씨(85)는 16일(현지 시간) 토크쇼 ‘더 뷰’의 고별 방송을 진행하며 이렇게 은퇴 소감을 밝혔다. “이제 보톡스를 맞을 시간이 생겼지만 TV에 더이상 안 나올 텐데 그걸 맞아 뭐 하겠느냐”는 농담도 잊지 않았다. 월터스 씨는 이날 베테랑 진행자답게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깔끔하게 고별 무대를 마무리했다.
미국 방송계에서 그는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녔다. 1974년 여성 최초로 NBC ‘투데이쇼’ 진행자가 됐으며 1976년에는 연봉 100만 달러라는 당시 미국 방송 역사상 최고 보수를 받으며 ABC 저녁 뉴스의 공동 메인 앵커 자리에 올랐다.
그는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지만 방송 경력이 언제나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방송 입문 초기에는 투데이쇼 작가로 활동하며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여성 코너’를 10여 년간 진행했다. 미인도 아닌 외모에 영어 ‘R’ 발음을 잘 못해 “비디오 오디오에서 모두 떨어진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오랜 무명 시절과 약점을 극복하며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탁월한 인터뷰 진행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데 필요한 광범위한 인맥과 상대방으로부터 진솔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능력에서 그를 따라올 만한 사람이 없다. 그는 명사 인터뷰 경쟁에 불을 붙였다. 지금도 미 방송 앵커의 능력은 얼마나 유명인 인터뷰를 잘 따내느냐에 좌우된다.
월터스 씨는 리처드 닉슨 이후 미국 모든 대통령과 그 부인을 인터뷰했다. 그가 성사시킨 인터뷰는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공동 인터뷰), 무하마드 리자 팔레비 이란 국왕(이상 1977년), 장쩌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1990년), 모니카 르윈스키(1999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2001년), 오프라 윈프리(2010년)와의 인터뷰가 7대 인터뷰로 꼽힌다.
그는 총을 찬 카스트로 의장과 일주일 동안 함께 지프 트럭을 타고 쿠바 전역을 돌며 인터뷰를 했다. 그 때문에 염문설이 나기도 했다.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별것 아니다”라고 무시하는 장 총서기에게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 별것 아니면 당신에게는 무엇이 별것이냐”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 장 서기의 안색이 변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는 인터뷰 비결에 대해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정해진 질문에 얽매이지 말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조언한다. 브로드웨이와 라스베이거스 쇼 제작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유명인에 대한 신비감이 없었고 정신지체자였던 언니와 살며 말하기보다 듣는 법을 배웠다고 2008년 자서전 ‘내 인생의 오디션’에서 밝혔다. 월터스 씨는 고별 방송에서 “굿바이보다 ‘아 비앵토’(‘또 봅시다’를 뜻하는 프랑스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더 뷰’의 제작자 활동은 계속하지만 방송 진행은 은퇴한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인은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잡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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