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수씨 “괭이갈매기 아빠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3일 03시 00분


새끼 죽어도 빈둥지에 알 있는듯 품고, 암컷은 상대방 부리 톡톡 건드려 유혹
배우자 부를땐 ‘구구’, 새끼 부를땐 ‘끼르륵’
18년째 연구… 1호 연구원 권영수씨

권영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장이 충남 태안의 무인도인 ‘궁시도’에서 괭이갈매기를 관찰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권영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장이 충남 태안의 무인도인 ‘궁시도’에서 괭이갈매기를 관찰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항구를 떠난 지 약 1시간. 충남 태안의 무인섬 ‘난도’에 다가가자 수십 마리 괭이갈매기가 상공을 메우고 있었다. 해마다 4월이면 괭이갈매기 2만여 마리가 이곳을 찾아 짝을 찾고 알을 낳는다. 30cm 간격으로 있는 둥지엔 부화를 앞둔 알이 놓여 있다.

“괭이갈매기는 새끼가 죽어도 빈 둥지에서 한동안 알을 품는 시늉을 합니다. 사람처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찡’하죠.”

권영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장(45)은 괭이갈매기 분야에선 국내 1호 연구원이다. 조류 학자들이 가끔 연구주제 중 하나로 괭이갈매기를 다룬 적은 있지만, 20년 가까이 오로지 괭이갈매기의 삶만 추적해 온 것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경희대 생물학과 석사과정 중이던 1997년 ‘괭이갈매기’를 장기 연구 주제로 선택한 뒤 18년째 괭이갈매기를 중심으로 다양한 해양성 조류에 대해 연구 중이다.

“당시 홍도에서 처음으로 괭이갈매기를 봤는데 마치 사람처럼 가족 단위로 움직이면서 사회성을 보이는 것이 너무 신기해 빠져들었죠.”

괭이갈매기를 연구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무인도까지 배로 왕복하는 데 드는 비용만도 약 100만 원. 뱃삯이 아까워 한 달간 섬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빈번했다. 수만 마리 괭이갈매기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는 배설물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몸은 모아놓은 빗물로 대충 씻었다.

20년 가까이 그는 갈매기에 번호를 매긴 발찌를 채워 매해 같은 장소에서 갈매기의 생애를 관찰하며 데이터를 축적했다. 괭이갈매기는 4∼7월 번식을 위해 매년 같은 장소를 찾는다. 괭이갈매기들은 사람처럼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사회성을 보인다고 한다.

연구를 오래하다 보니 권 센터장은 행동과 울음소리만으로도 괭이갈매기의 감정을 읽을 정도가 됐다.

“암컷이 수컷을 유혹할 땐 부리를 ‘톡톡’ 칩니다. 입안에 먹이를 많이 넣어주면 결혼하겠다는 신호죠. 배우자를 부를 땐 ‘구구 구구’, 새끼를 부를 땐 ‘끼르륵 끼르륵’ 하고 웁니다. 소리는 비슷한데 제 짝의 소리를 기막히게 알아듣고 날아오죠. 제 새끼가 아닌 다른 아기새가 둥지에 들어오면 바로 쪼아서 죽여버립니다. 자기 유전자를 지닌 새끼가 조금이라도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거죠. 다른 조류에 비해 자기 유전자에 대한 애착과 번식욕이 강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권 센터장은 “인간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족애’를 보이는 괭이갈매기의 사회성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해석해 내는 게 최종 목표”라며 “갈매기의 삶을 연구하며 국내 해양성 조류의 다양한 변화를 추적하는 것도 ‘괭이갈매기’ 연구 1세대인 내 몫”이라고 말했다.

태안=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괭이갈매기#철새연구센터#궁시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