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굿의 핵심은 눈물… 울음 통한 카타르시스 놀라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9일 03시 00분


네덜란드 출신 왈라반 성균관대 석좌교수 ‘한국의 민속신앙’ 펴내

2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성균관에서 만난 보데인 왈라반 성균관대 석좌교수. 네덜란드에 한국을 알리는 데학자로서의 일생을 바친 그는 “주변 분들이 ‘이제 한국사람 다 됐다’고들 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웃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 성균관에서 만난 보데인 왈라반 성균관대 석좌교수. 네덜란드에 한국을 알리는 데학자로서의 일생을 바친 그는 “주변 분들이 ‘이제 한국사람 다 됐다’고들 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웃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점집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어느 대학에 지원할지, 친구와의 동업을 청산할지 같은 극히 구체적인 문제를 무당에게 털어놓더군요. 이런 고민의 토로를 통해 삶에의 의지와 용기를 얻어간다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 한국학 영문연구서 ‘한국의 민속신앙’(Korean Popular Beliefs·집문당)을 펴낸 보데인 왈라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교수(67)는 한국의 점집 풍경에서 받은 느낌을 이렇게 전했다.

왈라반 교수는 유럽 한국학 1세대학자인 네덜란드 레이던대 플리츠 포스 교수의 제자로 모교인 레이던대 한국학과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2012년 성균관대에 둥지를 틀었다. 1995년과 2007년 유럽한국학회의 회장을 두 차례 역임한 유럽의 대표적인 한국학자인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요즘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을 실감한다고 했다.

“제가 막 교수가 됐을 때는 한국학과 신입생이 인문대 28개 학과 중 꼴찌 수준이었어요. 학과 존폐를 걱정할 정도였죠. 요즘은 매년 신입생만 40∼50명으로 7위쯤 됩니다.”

그의 주요 관심 분야는 한국의 무속이다. 무당의 노래를 정리한 ‘한국의 무가(巫歌)’라는 연구서를 낸 그는 한국 무가가 가진 ‘눈물과 정화의 힘’을 주목했다.

“황해도식 굿을 하는 박수무당이 전라도 출신 망자의 위령굿에서 황해도 무가 대신 전라도 민요 육자배기를 불러 유족의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을 봤습니다. 의식 그 자체보다 울음을 통해 의뢰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게 굿의 핵심임을 잘 알고 있었던 거죠.”

그는 ‘하멜 표류기’의 저자 헨드릭 하멜(1630∼1692)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는 조선에서 13년이나 산 하멜의 표류기에 과장과 오류가 많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을 설명했다. “돈 욕심이 난 출판사가 조선에는 없는 코끼리나 악어가 등장하는 삽화를 넣기도 하고, 프랑스어판 번역자들이 원전에 없는 장을 제멋대로 추가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동인도회사의 문서에는 조선을 금은보화가 가득한 섬으로 묘사할 정도로 미지의 땅이었기에 그런 신비화 전략이 먹혀들 수 있었지요”고 말했다.

최근 다산 정약용에 관심이 많아졌다는 그는 다산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버금가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목민심서만 읽어봐도 정치부터 과학, 종교, 음식에 이르기까지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산이야말로 조선이 낳은 최고의 인류학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다산의 저작을 통해 조선의 구석구석을 살펴 볼 수 있죠.”

왈라반 교수는 가수 패티 김의 노래 ‘이별’과 판소리 감상이 취미다. 특히 판소리는 변강쇠가의 사설을 번역해 소개할 정도로 푹 빠져 있다.

“중국의 한시와 노골적 성 묘사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판소리 사설을 듣고 있으면 세계에 이런 독특한 예술양식이 또 있을까 새삼 감탄합니다. 한국인들도 자부심을 갖고 더 많은 세계인들이 판소리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 주면 좋겠어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한국의 민속신앙#보데인 왈라반#성균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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