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스페인 차기 국왕으로 즉위하는 펠리페 왕세자(46)의 대관식을 앞두고 레티시아 왕세자비(42·사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유명 앵커 출신으로 뛰어난 미모와 패션 감각까지 갖춘 그는 사상 첫 평민·이혼녀 출신 왕세자비라는 점에서 결혼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1972년 스페인 서북부 아스투리아스에서 태어났다. 기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의 3녀 중 장녀로 가정 형편은 유복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부모는 이혼했다. 고등학교 때 마드리드로 이주했고 철학 교사 겸 작가 알론소 게레로 페레스를 만나 10대 시절부터 동거했다. 둘은 1998년 결혼했지만 1년 뒤 이혼했다.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보수 일간지 ABC를 비롯해 EFE통신, CNN 스페인 지사 등에서 일했다. 2001년 9·11테러 때는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2002년 공영방송 TVE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국적 인지도를 지닌 방송인으로 발돋움했다. 2002년 말 방송국 주최 만찬에서 펠리페 왕세자를 만났고 이듬해 11월 약혼했다.
약혼이 알려지자 스페인이 술렁였다.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에서 평민 출신 이혼녀 왕세자비가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가 전 남편과 살던 시절 낙태를 했고 마약에 손을 댔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두 사람은 반대 여론을 극복하고 결국 2004년 5월 결혼식을 올렸다.
마드리드 알무데나 성당에서 열린 결혼식은 1981년 찰스 영국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결혼식에 맞먹을 정도로 성대했다. 40여 개국에서 사절단을 보냈고 세계 12억 명의 시청자가 생중계로 결혼식을 지켜봤다. 경비를 선 경찰이 2만 명이었고 결혼 비용도 2100만 달러(약 210억 원)에 이르렀다.
그는 왕세자비가 된 뒤 소탈한 면모를 보여 국민 지지를 얻었다. 두 딸 레오노어(9), 소피아(7)를 학교에 직접 데려다주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기도 했다. 마드리드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 대출금도 아직 갚고 있다.
‘현대판 신데렐라’가 됐지만 아픔도 있다. 2007년 초 그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막내 여동생 에리카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친족의 장례식장에서도 근엄한 모습을 유지하는 대다수 왕족과 달리 동생의 죽음 앞에서 펑펑 우는 왕세자비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왕실이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야 군주제 존속에 대한 회의론이 줄어든다는 점을 파악한 시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결혼 때부터 내내 며느리를 지지했다.
고질적인 경제난 속에 최근 왕실의 사치 및 부패 추문이 잇따라 불거지자 스페인 일각에서는 군주제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 스페인 왕실은 젊고 매력적인 국왕 부부의 등장이 이 논란을 상당부분 잠재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펠리페 왕세자가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부친과 달리 개혁적 풍모를 지녔다는 점도 이런 기대를 높이고 있다. 두 딸을 둔 그는 줄곧 “남자만 왕이 될 수 있는 왕위 계승법을 바꾸겠다”고 공언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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