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 후손 4명과 고려인청년예술단원 17명 등 고려인 동포 124명이 19일 모국을 찾았다. 이들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150년 전 조국을 떠나 북녘의 이국땅에 정착한 고려인의 후손들이 ‘아주 특별한 한국 나들이’에 나섰다. 선조들의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먼 곳에서라도 모국을 가슴에 담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19일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 방한에는 사단법인 ‘고려인 돕기 운동본부’ 주최로 러시아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 124명이 참여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12개 지역에서 온 이들은 전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객선을 타고 한국으로 출발했다. 방문단에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증손자인 쇼루코프 알렉산드르 씨(43)와 그의 아들(13), 박밀양 선생의 조카 김리마 씨(81·여), 김경천 선생의 후손 샤라피예프 에밀 군(16)도 포함됐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도서관에서 정의화 국회의장,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식이 열렸다. 이곳에서 만난 고려인 동포들은 첫 모국방문에 가슴 설렌 표정이었다. 알렉산드르 씨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와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증조부)의 조국을 처음 방문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김리마 씨도 “아버지에게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며 “한국에 직접 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비록 통역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전했지만 고려인 동포들은 행사 내내 밝은 얼굴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방문단은 29일까지 11일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안중근기념관, 경복궁, 강원 평창 2018 겨울올림픽 메인경기장 등을 둘러본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방문하고 자신들의 전통문화공연도 선보인다. 이들은 ‘독도는 한국 땅!’ ‘월드컵 4강 진출 기원!’ ‘안전하고 행복한 대한민국’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에 직접 서명을 하고 한국에서 만난 각계 인사의 서명을 받아 출국 전 한국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고려인 동포로서 대한민국을 응원한다는 의미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는 고려인 동포 약 55만 명이 살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이들은 나라 빼앗긴 설움을 함께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보내는 등 물심양면으로 모국을 도왔다. 1937년에는 소련(현 러시아)의 정책에 따라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는 아픔까지 겪었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이번 방문은 문화교류를 통해 고려인 동포들의 자부심과 민족적 긍지를 키우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광길 고려인돕기운동본부 대표는 “늦었지만 한국의 자유와 번영에 기여했던 고려인 독립유공자와 동포들의 방한은 의미가 있다. 이들의 한을 다독이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각인시켜 이들이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