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중앙지법(법원장 이성호) 주최로 열린 ‘2014 함께하는 조정포럼’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58·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200여 명의 판사와 변호사에게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재판하기 전에 조정을 먼저 거치게 하는 ‘조정 전치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정은 소송을 통하지 않고 당사자의 동의하에 제3자의 절충안을 받아들이는 분쟁해결 방법이다.
김 전 대법관은 판사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분쟁해결은 판결로 해야 한다는 ‘판결파’와 화해와 조정이 주된 해결이 되어야 한다는 ‘화해파’가 그것이다. 그는 “수원지법 합의부 부장판사로 근무할 당시 옆방의 동료 법관이 자신보다 1년에 100건이나 더 많은 사건을 종결한 비결은 바로 ‘조정’이었다”며 “지금은 화해와 조정이 기본적인 분쟁해결 방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조정제도의 장점으로 ‘소통’을 꼽았다. 법원과 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유연한 해결이 가능해 법리와 법 감정이 괴리되는 사건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는 국민권익위원장 재임 시절 고충처리위원회의 화해 전문가들이 민원인의 속사정까지 헤아리는 비정형적 방식을 통해 묵은 민원을 많이 해결한 사례도 소개했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원뿐 아니라 각급 법원에서 밀려오는 사건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판사 수를 사건 수에 비례해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차원에서 독립된 조정법원을 별도로 설치하고 각급 법원에서는 민사 전담 판사 중 3분의 2 이상을 조정 전담 판사로 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는 “미국은 전체 사건 중 5%만 판결하는데 한국은 조정 건수가 9%에 불과하다”며 “판결에서 조정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 사법의 미래는 없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