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이 주관한 ‘항일독립운동유적지 답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4일 중국 하얼빈 시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독립기념관 제공
“중국에 세워진 외국인 3명의 기념관 가운데 ‘의사(義士)’라는 공식 명칭이 붙여진 곳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유일합니다.”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위원 김주용 박사(48)의 설명에 4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역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방문한 40명의 역사학도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100여 m² 규모의 전시관을 지나 통유리 밖으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표지석이 눈에 들어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김 박사는 “바로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시작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부터 5박 6일 일정으로 독립기념관이 주관한 ‘항일독립운동유적지 답사’에 참여한 전국 19개 대학 역사학과 역사교육학과 학생들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이번 답사에서 학생들은 중국의 동북 3성을 모두 방문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되짚었다. 답사단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뤼순(旅順)의 안중근 의사 순국지인 뤼순감옥을 시작으로 단둥(丹東), 지린(吉林) 성 허룽(和龍) 시의 청산리대첩 유적지, 하얼빈 시 등지를 방문했다.
답사단은 진지한 분위기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웠다. 유적의 의미를 설명한 김 박사는 “만주, 간도 곳곳에는 우리 역사가 남아 있지만 그 공간의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동시에 역사도 잊어버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안중근 의사가 숨진 뤼순감옥과 청산리대첩 기념비 등에서 헌화하고 묵념을 하며 감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지린 성 룽징(龍井) 시에 위치한 ‘3·13 반일의사릉’을 관리해 온 최근갑 씨(89)가 “만주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건 바로 우리 민족”이라고 강조하자 학생들은 박수를 쳤다.
답사단은 중국 곳곳에 퍼진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부족한 현실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3500여 명의 독립군을 배출한 신흥무관학교 터는 아무 표시도 없이 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봉오동전투 기념비, 청산리대첩 기념비도 전투가 벌어진 장소와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김 박사는 “제대로 연구된 역사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우리나라와 중국처럼 세계 각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답사를 마친 학생들은 이번 답사를 통해 독립운동사 연구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정태석 씨(20·인천대 2년)는 “근현대사가 어렵고 슬픈 역사라 인기가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반인 만큼 꾸준히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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