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손자와 산에 갔는데 산에서 갑자기 불이 났어요. 손자가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산타 할아버지.”
아직도 ‘싱거운’ 유머가 통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소록도다. 치과의사인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46)은 이런 시원찮은 유머로 소록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귀염둥이’가 됐다. 그가 소록도에서 보낸 시간만 20년. 나이도 40대 중반을 훌쩍 넘겼다.
JW중외그룹은 소록도에서 20년 동안 한센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온 오 부장을 ‘제2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성천상은 고 이기석 중외그룹 창업자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의료복지 증진에 기여한 의료인에게 주는 상이다.
오 부장은 사실 지난달 중순 수상자 결정을 위해 성천상 주최 측이 찾아갔을 때 “더 훌륭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심지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게 상 받을 일인가”라고 되묻기까지 했다.
오 부장은 1995년 국립소록도병원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게 되면서 소록도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의료진이 한센인에 대한 진료를 기피하는 모습과, 한센인들이 그런 의료진에 정을 주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일생을 소록도에 바치기로 했다.
손가락이 없어 양치를 잘 못하는 한센병 환자들은 입안 건강이 엉망이었다. 많은 사람의 입속에 고름이 생겨 있었고, 후유증으로 아래로 처진 입술 때문에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이도 많았다. 오 부장은 ‘아랫입술 재건 수술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환자 400여 명에게 입술 성형 수술을 해줬다. 지금까지 그에게 치료받은 한센인은 1600여 명에 이른다.
오 부장에 따르면 한센병은 ‘편견의 병’이다. 나병균은 결핵균보다 100배나 약하며 3개월만 약물치료하면 사멸한다. 하지만 과거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때 ‘문둥이들이 간을 빼 먹으려고 아이들을 납치했다더라’란 말이 나올 정도로 편견이 심한 병이다.
오 부장은 “한센인들이 아직까지 편견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며 아쉬워한다. 그는 “특히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병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며 “‘채널A’의 ‘쾌도난마’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것도 이런 편견을 좀 없애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소록도는 어느새 오 부장의 인생(人生)이 돼 버렸다. 그는 소록도에서 6년째 간호사로 근무하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간호사 울리면 죽을 줄 알라’는 한센인들의 ‘협박’이 섞인 축복 속에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인 두 딸은 소록도가 고향이자 자랑거리다. 오 부장 가족은 1년에 두세 번 해외의 한센인들을 찾아 떠난다. 2005년부터 여름휴가나 명절기간마다 캄보디아, 몽골, 필리핀으로 찾아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가 치료를 하면 부인은 소독하고 큰딸이 통역을 한다. 막내딸은 가글을 시키고 약을 준다. 그는 “넷이 다 가니까 나중에 가족 선물 안 사와도 되니 얼마나 좋냐”라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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