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의 자유… “Thank you”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5일 03시 00분


딸 살해 누명 美 이한탁씨 석방

친딸 살해 혐의로 2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미동포 이한탁 씨(가운데)가 22일 오후(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 연방법원 중부지법에서 ‘25분간의 보석 심리’를 마친 뒤 석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해리스버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친딸 살해 혐의로 2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미동포 이한탁 씨(가운데)가 22일 오후(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 연방법원 중부지법에서 ‘25분간의 보석 심리’를 마친 뒤 석방 소감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감정에 북받쳐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해리스버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25년의 억울한 속박을 마지막으로 풀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5분.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온 그가 자유의 몸으로 세상에 던진 첫마디는 “감사합니다”였다.

“기립(Rise, please).”

22일 오후 1시 10분(현지 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해리스버그의 연방법원 중부지법 9층 법정. 불을 질러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돼 25년간 옥살이를 한 재미동포 이한탁 씨(79)의 석방을 결정하는 보석심리가 시작됐다.

인자한 인상의 마틴 칼슨 판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심리를 진행했다. 이 씨의 법정 대리인인 손경탁 구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불러내 ‘이 씨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 계획을 상세히 물었다. 이 씨의 고교(국립철도고) 후배인 손 위원장은 25년간 한결같이 구명운동을 벌여온 대표적 인물. 이제 ‘이 씨의 남은 미래’도 돌보게 된 것이다. 손 위원장은 “이미 뉴욕 플러싱에 거처할 아파트를 마련했다.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했다.

마지막 이 씨의 서명 순서. 칼슨 판사는 걸음걸이가 불편한 이 씨에게 “의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 씨는 앉지 않고 선 채로 보석 석방 서류에 서명을 마쳤다. 판사는 법정을 떠나기 직전 “당시 수사기법에 오류가 있었음이 인정됐다”며 보석을 허락하는 이유를 나열한 뒤 “법원의 임무는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심리가 끝난 시간이 오후 1시 35분이었다.

이 씨는 법정을 떠나는 판사와 법원 관계자에게 “고맙다(Thank you)”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한 그의 첫 발언이었다. 그는 ‘잃어버린 25년’의 원인을 제공한 검찰 관계자들과도 악수를 했다. 방청석에 있던 50여 명의 지인들과 취재진을 향해 걸어오면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법원 밖으로 나와 준비한 성명을 읽었다. “아무 죄도 없는 저를, 인생의 황금 같은 25년 1개월의 세월을 중범죄인만 취급하는 감옥에서 살게 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저는 죄 없는 한 사람으로 보석이 됐습니다.”

이 씨를 15년 넘게 변호해온 피터 골드버그 변호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늘은 그 길고 긴 여정을 마치고 ‘정의’에, ‘자유’에 마침내 도달한 너무나 기쁜 날”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통역을 담당해온 임호선 씨는 “절박한 이 씨는 골드버그 변호사에게 때론 애원도 하고, 때론 화도 내면서 ‘길고 긴 이야기’를 수없이 늘어놓았다. 그 모든 걸 경청하며 변론한 골드버그 변호사야말로 또 다른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이 씨는 석방 뒤 거주지인 뉴욕 플러싱으로 향하는 길에 맥도널드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때웠고 그날 저녁 뉴저지 주 포트리의 한국식당에서 제대로 된 첫 식사를 했다. 그의 둘째 딸과 사위가 함께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교도소에서 나오면 두부를 먹지 않느냐”며 생두부를 주문해 먹기도 했다. ‘감옥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인 순두부찌개를 밥과 반찬과 함께 다 비웠다.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고 배석자들이 전했다.

해리스버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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