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진보신학의 명문인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 종신교수이자 여성, 생명, 환경운동가인 현경 교수(58·사진)는 소문대로 솔직했다. 그는 언뜻 보면 일·가정 양립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알파걸’일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현경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엔 여성의 희생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현경 교수의 본명은 정현경이다. 하지만 호주제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성을 떼고 현경이란 이름만을 대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가 26일부터 나흘간 경북 구미에서 열리고 있는 ‘제14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행사에 연사로 참석한다. 500여 명의 여성리더가 참석하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경력단절 예방 및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현경 교수는 “이혼경력자에 자녀도 없는 나는 남들 눈엔 ‘일’을 선택한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며 “일·가정 양립 부문에선 0점인 내가 행사에 초청됐다는 것이 너무 놀랍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경 교수는 강연 중 다음 세 가지는 꼭 언급할 계획이다. 첫 번째는 ‘희생자 마인드’를 버리기. 일과 가정을 동시에 챙기는 것이 힘에 부치더라도 남편이나 타인 등 남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육아 및 가사는 부부 공동 책임이라는 걸 기억하기. 마지막으로 일·가정 양립 고통의 원인은 개인의 인내력과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문제가 크다는 걸 기억하기. 현경 교수는 “특히 육아 문제, 경력단절 문제는 국가가 정책적으로 적극 나서서 지원하고 탄탄히 기초를 다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현경 교수는 무엇보다 ‘일’과 ‘가정’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가정’은 정상적인 결혼을 통해 구성되는 개념만도 아니다”며 “일은 존재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노동이어야 하고 가정은 동성부부, 한부모 가족 등은 물론이고 애인과 친구, 소중한 사람들과의 공동체로까지 범위가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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