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0명 치킨집 사장님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윤홍근 제너시스 BBQ 회장, 점포 무료로 차려주고 운영 지원

지난달 경기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 ‘치킨대학’에서 열린 ‘탈북민 창업 캠프’에서 탈북민들이 치킨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제너시스BBQ 제공
지난달 경기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 ‘치킨대학’에서 열린 ‘탈북민 창업 캠프’에서 탈북민들이 치킨 제조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제너시스BBQ 제공
“우리 손을 놓지 말아주세요.”

탈북민 김화(가명·48·여) 씨는 지난달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외쳤다. 제너시스BBQ는 ‘BBQ 치킨’으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한국에 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김 씨는 삶의 ‘마지막 보루’로 치킨 가게를 떠올렸다. 그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올 때 중국 공안에 걸려 꼬챙이로 등을 수차례 찔리고도 참아 냈다. 이번도 그때만큼 비장했다. 그의 표정을 읽은 윤 회장은 치킨 가게를 내주기로 결정했다. “단 죽음을 각오하고 온 만큼 절박함을 잃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 씨를 비롯한 20명의 탈북민이 다음 달경 BBQ치킨집의 사장이 된다. 제너시스BBQ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치킨 점포 20개를 무료로 차려주고 운영을 지원해주는 ‘탈북민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11일 밝혔다. 최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탈북민 채용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대규모로 사업 점포를 개설해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예비 치킨집 사장이 되는 탈북민들은 해군 장교와 농구 선수 등 다양한 경력을 가졌다. 2011년 아들과 함께 한국에 온 강다현(가명·44·여) 씨는 전직 도 대표 농구 선수였다. 한국에 온 후 자립을 위해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사업은 모두 실패했다. 그는 “최근 사망한 북한에 있는 언니의 아이들에게 부쳐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역상인이었던 김화 씨는 “통일이 되면 내 고향에 점포를 차려 가족에게 치킨을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닭을 맛있게 튀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서비스 업종 특유의 친절함과 말투, 문화적 차이 등이다. 정경석 제너시스BBQ 영업본부 차장은 “교육 기간을 배로 늘려 전화 받는 법이나 말투 교정 등 서비스에 대한 부분을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 측은 반응을 본 후 지원 대상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의 고문이자 판문점 관광회사 ‘판문점트래블센터’의 대표인 김봉기 씨다. 그는 6월 말에 윤 회장을 찾아가 “소자본으로 ‘매뉴얼’대로만 하면 되는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탈북민들을 자립시키고 싶다”며 지원을 부탁했다. 제너시스BBQ는 7월 초 34명의 탈북민을 대상으로 ‘창업 캠프’를 열었고 이후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20명을 최종 선발했다. 이들은 15일부터 한 달 동안 교육을 받은 뒤 다음 달 말부터 치킨 가게를 운영한다.

20곳은 모두 신규 점포로 이들의 거주지 인근에 들어선다. 내부 인테리어와 각종 기구 등 약 1억 원씩의 신규 점포 설립비용도 제너시스BBQ가 부담한다. 점포는 5년 동안 위탁 경영 방식으로 운영되며 영업이익의 25%를 본사가 가져간다. 이후에는 탈북민이 점포를 소유해 가맹 점주가 되는 방식이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윤홍근#BBQ#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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