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감독님이랑 택시 타고 파리 가고 있어요. 택시비가 200만 원(1500유로)이래요. 휴게소는 없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천진난만하기만 했다.
15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에서 극적으로 우승한 김효주(19·롯데)였다. 한국 선수로는 최연소 메이저 챔피언이 된 그는 당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항공기편으로 파리까지 가려다 에어프랑스의 파업으로 택시에 올라 600km를 이동하고 있었다. 김효주는 무엇보다 초등학교 꼬마 때부터 자신을 지도해 준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54)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감독님이 대회장에 오셔서 든든했어요. 딴 선물이 뭐 필요 있나요. 우승이면 그만이죠.” 김효주는 17번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하려다 어이없이 뒤땅을 친 데 대해 “페어웨이가 딱딱할 줄 알았는데 부드러워 실수가 나왔다. 감독님의 흰 머리가 부쩍 늘었을 것 같다”며 웃었다.
전화기를 건네받은 한 전 감독은 “선수가 잘했을 뿐이다. 내 자리는 늘 뒤”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한 전 감독은 “효주가 한국에서부터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안 좋았다. 이번 대회 개막 이틀 전 통증이 심해져 다리를 절뚝거렸는데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며 기특해했다.
6세 때 원주에서 골프를 시작한 김효주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뒤 아버지와 함께 수도권에서 골프 레슨을 하던 한 전 감독을 찾아 지도를 부탁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10년 가까이 흘렀다. 한 전 감독은 “효주는 하루에 7∼8시간씩 골프를 칠 만큼 운동밖에 몰랐다. 여려 보였지만 속은 단단했다”고 칭찬했다. 완벽하다는 평가를 듣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김효주의 스윙은 한 전 감독의 지도 아래 완성됐다. 한 전 감독은 골프는 물론이고 진학 문제, 스케줄 관리에 식사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다.
한 전 감독은 최광수 신용진 등과 1988년 프로 입문 동기이지만 고질인 허리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한 뒤 지도자로 변신했다. 2006년과 2010년 아시아경기에서는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한국이 금메달 8개를 휩쓸도록 이끌었다.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던 김효주는 2010년 아시아경기 선발전에서 1타 차로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한 전 감독은 “어린 마음에 상처받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성장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시상식에서 김효주는 태극기를 두르고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 제자를 보는 스승의 눈가도 촉촉이 젖었다.
이번 우승으로 김효주는 LPGA투어 5년 출전권을 보장받았다. 세계랭킹도 20위에서 10위까지 뛰어올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의 희망을 밝혔다. 선수로서 못 해본 우승의 꿈을 지도자로 이룬 한 전 감독은 “효주가 체력이 약해 보강해야 한다. 더 큰 무대를 향한 효주의 시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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