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료봉사로 제2인생”… 레지던트 교육받는 교수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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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 前서울성모병원 교수 40대 후반 은퇴… 호스피스 근무

“저기 드레싱(소독)하고 있는 저 양반이 원래 교수님이었대….” “헉 그게 말이 돼?”(환자 보호자들)

서울 서초구에 있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 가면 눈에 띌 정도로 ‘나이 든’ 전공의(레지던트)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조영진 씨(50·가정의학과 레지던트 2년 차·사진)가 주인공이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원래 같은 병원 의대의 ‘임상약리과’(약물의 인체 내 작용을 연구하는 의학분야)’ 교수였다는 사실이다. 2012년 3월부터 조 씨는 13년 넘게 재직한 교수직을 과감히 내던지고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다.

의사들 사이에선 “약리과 교수인 조 씨가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경험을 쌓고 싶어서 전공의를 체험 형식으로 잠깐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조 씨는 2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교수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며 “제대로 된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고 강조했다.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대학교수직을 조 씨가 미련 없이 버리게 된 계기는 10년 전 일본 유학 경험 때문. 현장에서 일할 힘이 한참 남은 70세도 안된 노인들이 분리수거, 골목청소 등 단순 노동일에만 종사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 씨는 “우리 학교 교수 정년인 65세를 다 채우고 나와 새 직업을 구하는 건 너무 늦을 것 같았다”며 “남들보다 10년 더 빠른 은퇴가 고령화 시대에 적응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사실 은퇴 후 조 씨가 가장 되고 싶었던 건 대학 시절 꿈이었던 서양화가다. 하지만 아내 등 주변 사람들이 “소질이 대단히 부족하다”며 만류하는 바람에 마음을 접었다. 그래서 현장 의료진이 되기로 했다. 조 씨는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우리 주변과 해외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게 인생의 목표다.

“이른 은퇴에는 그만큼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고 조 씨는 강조했다. 그는 은퇴를 기획하기 시작한 2010년부터 헬스트레이닝을 하며 중년 근육남으로 거듭났다. 또 최소 서른 살은 어린 후배 전공의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피부 박피술까지 받았다.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싶어서다. 이달부터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조 씨는 “인생의 의미도 이곳에서 다시금 새기고 있다. 교수 은퇴를 잘한 것 같다”고 했다.

7, 8월 두 달간 조 씨를 지도한 호흡기내과 강지영 교수는 “조 선생님은 폐렴에 걸려 고생할 정도로 일을 열심히 하는 분”이라며 “후배 의사들에게는 그저 놀라움과 존경의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학부 시절 직접 조 씨로부터 임상약리학 강의를 들은 제자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호스피스#서울성모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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