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평화·여성운동의 대모로 일본 헌정 사상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중의원(하원) 의장을 지낸 도이 다카코(土井たか子) 전 사회민주당 당수(사진)가 20일 효고(兵庫) 현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고 일본 언론이 28일 보도했다. 향년 85세.
1928년 고베(神戶)에서 태어난 도이 전 당수는 교토여자전문학교(현 교토대) 중국어과 재학 중 도시샤(同志社)대에서 ‘평화주의와 헌법 9조’를 주제로 한 강연에 감명을 받아 이 대학 법학부로 편입했다.
헌법 강사를 지내다 1969년 중의원 선거에서 사회당 소속으로 처음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2회 연속 당선하면서 36년 동안 의석을 지키며 “평화헌법과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평화헌법의 수호자’로 활약해왔다.
고인은 1989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소비세 증세를 추진하던 자민당에 맞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구호로 ‘마돈나 돌풍’을 일으키며 자민당 과반수를 깨뜨렸다. 당시 그는 “산이 움직였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1993년 사회당 등 8개 당이 힘을 합쳐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비자민 연립정권’을 세우자 사상 첫 여성 중의원 의장을 지냈다. 한때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감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해 총리가 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자위대는 합헌”이라며 사민당의 기본 정책을 대전환하면서 당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인은 1996년 9월 무라야마 전 총리를 이어 당수가 됐지만 잇따른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2003년 사임했다. 2년 뒤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2008년 10월 정계에서 은퇴했다.
1973년 도쿄에서 납치된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 운동과 한국 민주화운동을 헌신적으로 지원하는 등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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