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들고 돌아오겠다”며 美 망명길 오른지 104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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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이룬 ‘도산의 꿈’ 외증손자가 이뤄
화가 기티스씨 태극기 작품 연천 유엔군 화장장에 기증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녀 크리스틴 커디 씨(왼쪽)와 외증손자 마이클 기티스 씨가 3일 서울 도산공원에서 태극문양이 휘몰아치며 하나가 되는 모습을 띤 ‘데니 태극기’를 형상화한 작품 앞에서 웃고 있다. 사진 속 작품은 화가인 기티스 씨가 직접 만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도산 안창호 선생의 외손녀 크리스틴 커디 씨(왼쪽)와 외증손자 마이클 기티스 씨가 3일 서울 도산공원에서 태극문양이 휘몰아치며 하나가 되는 모습을 띤 ‘데니 태극기’를 형상화한 작품 앞에서 웃고 있다. 사진 속 작품은 화가인 기티스 씨가 직접 만들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지금 이별할 때는 빈주먹을 들고 가나 후일 상봉할 때에는 기(태극기)를 들고 올 터이니…훗날 다시 만나보자 나의 사랑 한반도야.”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10년 국권 상실 전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며 고국에 대한 사랑을 담은 ‘거국가(去國歌)’를 남겼다. 도산은 태극기를 들고 돌아오지 못한 채 1938년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못 이룬 꿈을 외증손자 마이클 기티스 씨(27)가 3일 한국을 찾으면서 대신 이뤘다.

어릴 적 외할머니 안수산 씨(안 선생의 딸)에게서 거국가를 듣고 자랐던 기티스 씨. 당시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최근 다시 들으며 도산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티스 씨는 ‘태극기를 다시 들고 오겠다’는 외증조부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화가인 그는 도산이 생전 봤을 태극기를 찾아 작품으로 형상화하기로 했다. 1890년경 제작된 ‘데니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고종의 외교고문을 지낸 미국인 오웬 데니가 미국으로 가져간 태극기. 지금의 태극기와 달리 태극 문양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원 안에서 휘몰아치며 하나가 된 모습이다. 그는 동료 화가 듀크 최 씨의 조언을 받아 붓 대신 주사기를 이용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경기 연천군의 유엔군 화장장에 작품을 기증한다. 6·25전쟁 때 참전한 연합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화장했던 곳이다.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와 6·25공원국민운동본부(이사장 김석우)가 주관하는 헌정행사도 9일 열린다.

서울 도산공원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그는 “도산(그는 외증조부 대신 도산이라는 표현을 썼다)의 소원을 이뤄준 기분이 든다”며 뿌듯해했다. 어머니이자 안창호 선생의 외손녀인 크리스틴 커디 씨도 함께 왔다.

“태극이 원 안에서 돌아가면서 하나로, 함께하는 것으로 바뀌어갑니다. 음양은 움직이고 경계가 없습니다.”

작품을 소개하며 그는 “한반도 통일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남북은 과거에 하나였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다”며 “도산이 살아 현재의 분단된 한반도를 보면 굉장히 슬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사기를 사용한 기법으로 만든 도산의 전신 초상화를 4일 도산공원 도산기념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도산정신에 대해 물었다. “사랑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세요(Love yourself, love others).” 도산이 생전에 강조했던 애기애타(愛己愛他)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도산 안창호#마이클 기티스#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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