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에 주름이 깊게 팬 50대 중년 남성은 빨간색 ‘홈리스’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한때 술과 도박에 빠진 자신을 떠나버린 가족이 생각나 울컥했다.
19일부터 26일까지 칠레 산티아고 대통령궁 광장에서 열리는 ‘홈리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김귀현 씨(54)는 14일 서울 영등포공원 풋살경기장에서 연습을 하던 도중 택배로 배달된 유니폼을 손에 들고 잠시 머뭇거렸다. 한동안 유니폼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그에게 주변에서 “이제는 당신도 대표 선수예요”라고 얘기하자 그제야 유니폼을 입었다. 김 씨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축구 동아리를 조직해 이끌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하지만 건설 현장에서 철근을 관리하던 반장으로 근무하던 중 회사 사정으로 일자리를 잃어 실업자가 된 후 아내와 이혼하고 아이와도 헤어져야 했다.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전전했고, 이대로 삶이 끝나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축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홈리스 월드컵’은 그야말로 직장을 잃고 거리로 쫓겨난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치르는 축구 월드컵이다. 올해는 60개국에서 약 500명이 참가한다. 풋살과 비슷한 방식으로 전후반 7분씩, 4인제로 치러진다. 축구를 통해 삶의 활력을 찾고 인생의 목표와 의지를 되찾고자 하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한때 박지성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함께 활약했던 포르투갈의 베베(24)도 이 대회 출신이다.
노숙인의 재활을 돕고 있는 ‘빅이슈 코리아’는 전국 노숙인 재활기관을 돌며 이 대회의 취지를 설명한 끝에 31개 단체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빅이슈 코리아’는 노숙인들로 하여금 ‘빅이슈’라는 잡지를 거리에서 판매하게 한 뒤 이 잡지 판매액의 절반을 해당 노숙인이 갖도록 하고 있다. 전국에서 모인 노숙인들이 3일 치열한 선수 선발전을 치렀고 그중 10명(후보 2명 포함)이 발탁됐다. 이들은 이후 합숙훈련을 해왔다.
한국을 대표해 출전하게 됐지만 이들은 대부분 참담한 노숙 생활을 경험했다. 홈리스 월드컵에는 기본적으로 노숙인들이 참가하지만 알코올 치료센터 등에 입원한 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다. ‘홈리스’라는 문자 그대로 집이 없거나,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 각종 치료단체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모두 참가할 수 있다.
선수 8명 중 유일하게 노숙을 경험하지 않은 이계환 씨(55)는 연세대 축구부 신재흠 감독과 동기로 대학 시절까지 선수로 뛰었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방황의 시기를 겪은 그는 본인 스스로 재활센터에 들어가 축구를 통해 술도 끊고 담배까지 끊었다. “제 인생에 아픔이 있었나 싶어요. 축구로 인생이 바뀐 것 같습니다.” 홈리스의 새로운 삶을 향한 인생극장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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