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동맹휴학이 전개되던 1924년 광주고보에 진학했다. 1928년 일왕을 비판한 문서 수십 장을 인쇄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광주 송정리역 등에 게시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퇴학당했다. 이 사건은 동맹휴학으로 번졌다.
1931년 일본에 유학했지만 임시정부와 내통한 혐의로 모진 고문을 당한 뒤 1933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군으로 복무하면서 항일전투에 참가했다.
국가보훈처는 13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학술강연회를 개최하고 이달 한 달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활동을 담은 사진전을 개최한다.
▼ 6·25영웅 강길영 해병 중위 ▼
국가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해병 제1연대 소속으로 강원 양구 전방의 924고지 전투에 참가해 돌격전을 감행하다 전사한 강길영 해병 중위(사진)를 11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1951년 7월 강원 홍천 부근에 배치돼 있던 미 해병 제1사단과 해병 제1연대는 북한군 최강 부대인 제3군단 예하 제1사단 3연대와 대치하게 됐다. 이곳을 점령하면 적의 본거지로 알려진 내금강을 제어할 수 있었다.
적진 100m 전방에서 중대장이 목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지자 중대 선임장교였던 강 중위는 선두에서 작전을 지휘하다 적의 총탄에 맞았다. 강 중위가 전사한 다음 날 우리 군은 924고지를 점령했다. 정부는 1953년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 호국인물 임상택 육군 소령 ▼
전쟁기념관은 2일 수류탄을 몸으로 감싸 부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고 산화한 임상택 육군 소령(사진)을 11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임 소령은 1961년 육군보병학교에 들어간 뒤 갑종간부 제157기로 임관했다. 1967년에는 백마부대 전투 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해 월맹 정규군 7명을 사살하는 등 전공을 세웠고, 귀국 후에는 제3사단(백골부대)에 배속돼 휴전선에 침투한 무장간첩 2명을 사살했다.
1968년 11월 임 소령은 중동부 전선에서 부비트랩 설치작업을 하던 중 중대원 1명이 실수로 부비트랩에 설치된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자 수류탄을 감싸 안고 산화했다. 10명의 부하는 생명을 구했다. 정부는 1계급 특진과 함께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6일 추모행사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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