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강남구 광평로 31길 비구니회관 지하 1층 조리실. 90여 m² 남짓한 조리실에는 50여 명의 수강생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곳은 사찰음식의 권위자인 선재 스님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찰 요리와 문화를 강연하는 자리다. 이날 요리는 ‘표고버섯 야채만두’. 고기 대신 표고버섯을 이용해 감칠맛 나는 만두를 만들어 냈다. 수강생들은 관심 어린 표정으로 스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손놀림 하나하나에 주목했다. 대부분 건강한 밥상에 관심이 많은 주부지만, 종교를 초월해 간혹 수녀 등이 스님의 음식을 배우러 오기도 한다.
스님은 일주일 중 3일은 이곳에 머물며 사찰음식을 시연한다. 강연을 들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나머지 시간에도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지방이나 연수원 등에서 특강을 주로 한다.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스님은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김치를 잘 먹일 수 있을까’가 요즘 스님의 가장 큰 고민이다.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청계·광화문광장, 세종로공원, 태평로 일대에서 서울시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와 채널A가 후원하는 ‘김장문화제’에 참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호박, 홍시, 집간장 같은 천연재료에 사찰식 조리법을 가미해 김장 담그는 법을 선보이고 시민들과 함께 체험해 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사찰김치는 자극적이지 않고 비린내가 적어 김치 먹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외국인이나 아이들도 잘 먹는 편입니다. 김치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보편화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김장’은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다. 시대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실제 삶 속에서 김장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김치는 한국인의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가 다시 김치를 주목하고 있다.
사찰김치 역시 하나의 음식이기 이전에 절간에서 1700여 년을 내려온 문화다. 오랜 시간을 내려오면서 시대에 맞게 변하기도 했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사찰의 김치는 파 마늘 달래 부추 무릇 등 오신채를 일절 넣지 않고 생강과 소금을 양념으로 한다. 찹쌀 풀 대신 보리밥, 감자, 호박 삶은 물을 넣는다. 젓갈 대신 간장이나 된장으로 맛을 낸다.
화학조미료를 음식에 넣고 성장촉진제로 몸집만 키운 재료는 자연에서 얻은 것만 못하다는 게 스님의 생각이다. 단맛을 내기 위해 김치에 설탕을 넣지 않고 호박, 홍시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찰김치는 늦은 봄까지 먹을 김치에는 소금을 많이 넣고 다른 양념 없이 고춧가루만 조금 넣는다. 무, 배추, 열무 외에 고들빼기, 무청, 갓, 연근, 우엉, 고추 등이 재료로 쓰인다. 제피 잎이나 가루를 넣어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사찰에서는 김치가 빨리 익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떡갈나무 잎을 깔기도 하고, 김치를 보관할 때 생강나무를 함께 넣어 자극적인 냄새를 줄이기도 한다. 또 뽕나무를 넣은 장아찌를 먹으면 중풍 예방 효과도 있다.
“흔히 사찰김치 하면 간이 안 돼 밍밍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사찰김치는 재료가 가진 고유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천연재료로 양념을 하기 때문에 강한 맛이 나지 않고 오히려 맛깔스러워요.”
씨앗을 뿌려 기르고 자연으로부터 선물 받은 재료로 정갈하게 담가 이웃들과 나누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은 늘 절 주변에서 얻은 재료로 김치를 담근다. 배추 한 포기, 무 하나에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스님은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에 대해서도 김치에 빗대어 조언했다. “김장은 각자 다른 생명을 하나로 버무려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한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살맛 나는 사회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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