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서 고향 잊을까봐, 1960년대 무월리만 그렸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7일 03시 00분


파독간호사 출신 화가 송현숙씨 한국서 개인전

14일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를 찾은 재독 화가 송현숙 씨. 뒤에 보이는 그림이 5획으로 완성한 작품 ‘5획’이다. 한국 교환학생 시절 서예를 배운 그는 “추사 김정희가 같은 글씨를 평생 썼듯 같은 그림을 다른 붓질로 계속 그리고 있다”고 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14일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를 찾은 재독 화가 송현숙 씨. 뒤에 보이는 그림이 5획으로 완성한 작품 ‘5획’이다. 한국 교환학생 시절 서예를 배운 그는 “추사 김정희가 같은 글씨를 평생 썼듯 같은 그림을 다른 붓질로 계속 그리고 있다”고 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구부정한 횃대에 감긴 듯 걸린 명주 천, 고무신, 그리고 등 굽은 쪽진 머리 여인.

한국에선 보기 힘들어진 옛 모습이 그의 그림 속에 있다. 비행기로 10시간을 넘게 날아가야 닿는 독일 함부르크 교외 작업실에서 새벽까지 씨름하며 그려낸 작품들이다.

“제 몸이 기억하는 고향은 1972년 독일로 떠나기 전에 머물러 있어요. 전남 담양의 대숲으로 둘러싸인 고향 무월리에선 어머니가 할머니와 길쌈하며 옷을 지어 주셨지요.”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개인전(다음 달 31일까지)을 갖는 재독 화가 송현숙 씨(62)는 그림도, 사투리도 1960년대 무월리 시절에 멈춰 있다. 그는 서독 간호보조사 모집 광고를 보고 나이 스물에 함부르크로 떠나 독일인 남편(요헨 힐트만 전 함부르크 미대 교수)과 지금껏 살고 있다. 그래서 호남 사람보다 더 진한 사투리를 쓰고, 한국에 살았다면 못 그렸을 토속적인 작품을 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8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송 작가는 “고교 졸업 후 그 이상의 뒷바라지는 기대하기 어려워 스스로 기회를 잡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고 했다. 당시 파독 간호사들은 계약기간이 끝난 뒤 절반은 귀국하고 절반은 남았는데, 송 작가는 독일에 남아 제2의 인생을 개척한 쪽이었다.

“4년간의 간호사 생활 중 마지막 1년은 정신병동에서 약물중독자들을 돌봤어요. 그림 그리기와 도자기 굽기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보며 ‘성인이 돼서도 미술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는 1977년 늦깎이 대학생으로 함부르크 미대에 진학해 그림을 배웠다. 지금의 한국적인 화풍은 1984년 독일 학술교류처의 장학금을 받아 전남대 미대로 연수를 와서 한국 미술사와 서예를 배우며 형성된 것이다.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고향의 이미지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듯했어요.”

송 작가는 서예가가 그러하듯 단숨에 획을 긋고, 10획을 넘지 않는 붓질로 그림을 완성한다. 도배할 때 쓰는 한국의 귀얄 붓에 서양 물감인 템페라를 묻혀 그린다. 작품 제목 ‘5획’은 5획으로 완성한 그림, ‘7획 뒤에 인물’은 7획으로 완성한 그림 저편에 숨겨진 인물이 있다는 뜻이다. 10가지 정도의 소재를 최소한의 붓놀림으로 반복해 그려내는 그의 작풍에선 구도자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막대기는 “정착할 때 쓰는 말뚝의 의미도 있고, 고향과 제2의 고향, 현재와 과거를 뜻하기도 한다”고 했다. 말뚝을 이어주는 명주 천은 삶과 죽음을 모두 아우르는 이미지여서 즐겨 쓴다.

“집 앞 텃밭에서 키운 푸성귀로 저녁을 해 먹고 나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작업실에 스스로를 감금해 새벽까지 그립니다. 그림의 바탕색에선 푸른 기운이 감도는데 고향 담양의 대숲 같기도 하고, 40년을 살아온 함부르크의 사시사철 푸른 잔디 같기도 해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송현숙#추사 김정희#무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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