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들 “고국 어머니, 아들 얼굴 잊어버리겠다고… ”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2일 03시 00분


한국서 눈물 흘리는 시리아 난민들

11일 시리아 출신의 국내 체류자인 알 다헤르 자셈 씨가 자신이 낸 행정소송의 1심 승소 판결이 나기 직전 소송 서류를보고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1일 시리아 출신의 국내 체류자인 알 다헤르 자셈 씨가 자신이 낸 행정소송의 1심 승소 판결이 나기 직전 소송 서류를보고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이제야 보이네요.”

11일 오전 서울행정법원에서 만난 시리아 국적의 알 다헤르 자셈 씨(29)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법정 게시판에서 ‘원고 승소’라는 글자를 가리키며 “이게 이겼다는 뜻이냐”라며 몇 번이나 되물었다. 이날 1심 법원은 그가 “식당 주방보조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며 10월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10년. 관광을 하고 일자리도 알아볼 겸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이 가족과 생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랍의 봄’ 영향으로 이듬해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고국은 돌아가기에 너무 위험한 곳이 돼 버렸다. 시리아 정부군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였고 유학이나 외국 출장을 다녀온 사람은 감옥에 갇혔다.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한 그는 2012년 5월 한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올해 6월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명확한 규정 없이 그의 식당 취업을 막자 생계유지를 위해 소송을 냈다.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을 피해 한국에서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시리아인은 지금까지 467명. 인신매매와 성폭력, 아동 노동착취가 만연한 난민캠프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또한 내전의 상처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또 다른 시리아 국적자인 알하즈(가명·34) 씨는 아내 파티마 씨(26)가 10월 시리아로 돌아간 뒤 인천에 홀로 남아 무함마드(4)와 아브라힘(2) 두 형제를 키우고 있다. 그는 온종일 폐차장을 오가며 자동차부품을 모은 뒤 이 부품을 중동으로 수출해 돈을 번다. 오전 8시 어린이집에 맡겨진 아이들은 오후 7시나 돼서야 아빠 품에 안길 수 있다.

내전을 피해 2012년 한국에 도착한 이들 부부는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결국 전쟁이 가져온 상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는 밤새 악몽을 꿨고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새벽에도 포성(砲聲)이 들린다며 울었다. 국내에선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데다 얘기를 나눌 친구도 없어 증상이 더 심해졌다. 결국 그는 아내를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가족에게 전화하는 시간은 난민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다. 시리아 전력난으로 전화가 안 될 때가 많고, 그럴 때마다 가족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족을 영원히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이들을 힘들게 한다.

자셈 씨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내 얼굴이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더라. 그때 펑펑 울었다”고 했다. 2만5000원짜리 선불카드 한 장이면 약 1시간을 통화할 수 있는데 한 달에 서너 장씩 카드를 사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한국에 머무르는 시리아인들은 IS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독재정부를 함께 비난했다. 시리아인 대부분은 IS를 광신도 집단으로 보고 있지만 IS가 득세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사드 정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사드 정부와 IS가 싸우다 공멸한 뒤 새로운 민주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시리아#난민#체류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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