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꿈에 그리던 경찰복을 입었다. 순경이었던 첫 4년을 제외하고 그의 손에는 늘 수갑 대신 색소폰, 진압봉 대신 지휘봉이 들려 있었다. 주인공은 김영철 전 부산지방경찰청 포돌이 홍보단장(61)이다. 지난해 12월 말 정년퇴임한 그는 5일 “아마 경찰관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음악과 함께 보냈을 것”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30년 동안 김 전 단장이 무대에 오른 것만 2000여 회에 이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악기와 친했다.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밴드부에 들어가 색소폰도 배웠다. 이때 “평생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트클럽 무대에 설 정도로 음악을 즐겼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중음악 연주자를 ‘딴따라’로 보는 시선에 마음이 아팠다. 실망을 안고 군에 입대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제복 공무원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제대 후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4년 뒤인 1984년 ‘부산경찰악대’가 창설되며 전국 경찰을 대상으로 단원을 모집하자 주저 없이 원서를 냈다.
그의 일과는 음악을 전공한 의경들을 관리하고 함께 연주하는 것이었다. 외근수당도 없고, 승진도 쉽지 않았다. 김 전 단장이 경위 계급장을 끝으로 퇴임한 이유다. 그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버틴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이 보기보다 따뜻한 조직이란 걸 알리는 데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1999년 그는 부산경찰악대장을 맡아 지휘대에 섰다. 매일 7시간씩 의경 40여 명의 연주를 지도했다. 음악회를 준비할 때는 며칠씩 야근하기 일쑤였다. 힘든 중에도 어린이들 앞에서 연주하면 힘이 절로 났다. 김 전 단장은 “잔뜩 긴장해 있다가 우리가 편곡한 교가를 연주하면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2009년 악대가 폐지됐다. 남은 곳은 서울·제주지방경찰청과 중앙경찰학교 등 세 곳뿐이다. 부산경찰청은 그 대신 의경 12명으로 구성된 홍보단을 꾸렸다. 그는 지휘봉 대신 다시 색소폰을 들고 무대에 섰다. 신세대 의경들은 옛날 노래를 모르기 때문에 복지관 등 노인시설을 찾으면 김 전 단장이 직접 연주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연주하면 할머니들이 어찌나 우시던지…. 그럴 때마다 음악을 하길, 경찰이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단장은 앞으로 색소폰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사회에 봉사하는 일로 ‘인생 2막’을 꾸려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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