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홍찬식]“모든 사립高가 자사高돼야” 진보교육감의 폐지 시도 좌시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황우여 교육부 장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수능 절대평가는 교사들은 죄의식, 학생들은 자기비하로 흐르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이 교실 저 교실마다 다른 역사를 가르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수능 절대평가는 교사들은 죄의식, 학생들은 자기비하로 흐르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이 교실 저 교실마다 다른 역사를 가르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홍찬식 논설위원
홍찬식 논설위원
교육부는 2015년 한 해 뜨거운 뉴스 메이커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곧 가시화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대학 구조조정 문제는 하나같이 인화성이 높은 현안이다. 수능이 어떻게 개편될지는 전국 학부모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다. 사교육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좌편향 역사교육을 막는다는 취지로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검토하고 있지만 13개 시도의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선거 공약으로 반대 투쟁을 공언해 놓고 있다.

출산율 저하에 따라 궁지에 몰린 대학들은 교육부의 구조조정 방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심각한 청년실업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장기적인 대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5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교육정책의 키를 쥔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에 ‘불임국회’ 논란을 빚은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주역이다. 이 법을 포함해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으나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어 정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국제시장’이 화제인데 관람했는지….


“봤다. 내 인생의 한 과정을 보는 느낌이었다. 판사 시절인 1978년 독일에 유학한 적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들 우수한 인재들이었다. 젊은이들이 그때 역사를 잘 모르더라도 영화로 보여주니까 가슴에 와 닿을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애국심 얘기를 꺼내면 얼굴을 찌푸린다.

“그래도 한국 대표팀이 경기하는 축구장에 가면 우리 팀을 응원하지 않나.”

국민통합이 한국사 교육의 의미

―대한민국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나.

“역사를 교육할 때 복수 정답이 나오는 것을 가르칠 수는 없다.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서는 국민을 통합하는 의미가 부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교실 저 교실마다 가르치는 내용이 다르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교육은 국가 책임이다. 학자들이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나 민족정기가 잘 드러나는 역사를 가르쳤으면 한다.”

―한국사교과서 발행 체제를 정부가 직접 관장하는 국정으로 바꿀 건가. 국정 체제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인데….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 제작 일정상 올해 안에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평소 생각은….

“올바른 역사, 즉 정사(正史)를 국가가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전 국민이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역사가들이 정사를 써 줘야 한다. 현재 그런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사교육 잡는다”는 말 못쓰게 한다


―학부모들이 수능 개선 방향에 대해 궁금해한다. 어떻게 가는 건가.

“수능을 도입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요즘 교육현실에 맞게 개선할 시점이 됐다. 국가 차원의 시험으로서 앞으로 20, 30년에 대비해야 한다. 수능 영어는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수학과 국어 과목은 절대평가 전환 여부를 심층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수능 상대평가는 수험생들이 상위 4% 안에 들면 1등급, 그 아래서부터 상위 11%까지는 2등급 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수험생들은 일정 점수만 넘으면 모두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상대평가에선 1등급을 맞기 어렵지만 절대평가를 하면 훨씬 쉬워진다. 아직 연구 중이라고는 했지만 황 장관의 발언에는 ‘수능 절대평가’ 쪽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수능의 변별력도 중요한 게 아닌가.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입시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나.

“상대평가를 해서 상위 4%에게만 1등급을 주면 비교육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교사들은 자기가 가르친 모든 학생이 1등급을 받기를 바라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으니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자기비하에 빠지게 된다. 이런 현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과목이 영어다. 그래서 수능 영어부터 절대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모두 100점을 맞자’는 공감대를 이루고 그 목표가 실현 가능하도록 교육을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들은 여전히 학력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려고 할 텐데…. 대학들이 본고사를 치르겠다고 나서면 어쩔 건가. 본고사가 다시 생기면 사교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대학 재량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엄금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처럼 본고사를 도입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총장들의 단체인 대학교육협의회와 논의해 풀어 나갈 것이다.”

―정부는 공교육이 잘 이뤄지도록 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지 사교육 잡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교육부 내에서 ‘사교육 잡는다’는 말은 꺼내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가 아니라 ‘경찰부’처럼 국민들에게 비치게 된다. 공교육 정상화에 맞춰 교육다운 교육을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부, 규제 아닌 지원기관으로

―교육부가 해체돼야 한국 교육이 살아난다는 말도 있다.

“교육부 직원들과 하는 얘기이지만 ‘우리가 호랑이나 사자의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말을 종종 한다. 호랑이가 당장은 힘이 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곧 희귀동물이 되고 나중엔 멸종하게 된다. 교육부는 ‘규제 기관’이 아닌 ‘협의적 지원 기관’으로 가야 한다. 유익한 역할을 하는 양이나 소의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어느 진보 교육감은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은 진보 교육감 발목 잡는 것 말고는 없다”고 비판하더라. 진보 교육감들과는 소통하고 있는지….


“야당 소속 시도지사와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차원의 협의를 통해서라도 일부 대화를 할 수 있지만 교육감은 사정이 다르다. 교육의 중립성과 교육감 직선제와 맞물리면서 중앙정부와 연결점이 전혀 없다. 국민을 위한 교육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일체감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들이 자율형사립고를 없애려고 하는데….

“모든 사립고가 자사고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사고는 교육의 획일성을 개선할 수 있고 학생 개개인에 맞는 맞춤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립학교의 근본 취지에 잘 어울리는 학교 형태다. 자사고를 폐지한다면 한국 교육은 퇴보하는 것이다. 정부는 자사고를 보호하는 한편 일반고의 여건과 역량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일에 나서겠다.”

―정부의 교육정책이 너무 안이하게 가고 있다. ‘행복 교육’이라는 목표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비현실적이다. 공부가 노력 없이 되는 일인가. 선진국들은 인재 양성이 나라의 살길이라며 팔을 걷어붙이는데 우리는 되도록 공부를 안 시키려고 난리다. 국가 장래가 걱정된다.

“교육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다. 문제풀이 식의 교육은 이제 효력을 상실했다. 1등을 향해 달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어디를 향해 1등으로 달리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선진국 따라잡기로는 안 된다. 한국의 인재들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 창의성을 지니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이런 변화에 맞춰 교육의 틀을 다시 짤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 공약 중 엉뚱한 것이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를 없애버린 것이다. 부잣집이야 알아서 잘하겠지만 저소득층 아이들 가운데 학업이 부진한 학생들은 정부가 일찍부터 도와줄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를 안 하면 그런 학생들을 찾아낼 방법이 없다. 부활할 생각은 없는가.

“부활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내가 신중하게 접근하자고 했다. 과거와 같은 점수 위주 평가는 아니지만 종합적 평가는 필요하다고 본다. 2012년 대선 때 일단 결론을 낸 것이기 때문에 좀 더 논의해 보려고 한다.”

정부, 대학 구조조정 개입 불가피


―부실한 대학들은 그냥 놔둬도 자연스레 없어지게 돼 있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교통정리’를 하냐는 시각이 있다. 대학 생사여탈의 권한을 교육부가 쥐고 ‘갑(甲)질’ 하려는 의도 아닌가.


“정부가 대학 죽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으면 큰 혼란이 일어난다. 먼저 지방대학이 사라질 텐데 지방대학이 없어지는 것은 교육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이 있던 지역사회가 동반 침체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이 점에서 지방대학은 대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도권대학이냐 지방대학이냐를 떠나 실력 있는 대학들이 살아남도록 하는 합리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정부가 일정한 개입을 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 학교를 선정하는 과정에는 정부가 가급적 나서지 않으려 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과도 연결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청년실업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동안 학교는 학생들이 취업이 되든 안 되든 사회로 내보내고 손을 떼버리는 구조였다. 지금부터는 학생 학교 기업이 삼위일체가 돼 학교와 기업이 손을 잡고 학생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시켜 내보내야 한다. 올해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가운데 9개교를 선정해 ‘선(先)취업 후(後)진학’의 약정형 체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고등학교 입학 때 이미 취업할 기업이 정해지고 학교는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실시한다. 전국 41개 산업단지와 연결해 확대해 나갈 것이다.”

―지난해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지원을 놓고 여야가 큰 갈등을 빚었는데 올해 말에도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근본 해법은 없나.

“교육청으로 들어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어들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과거에는 해마다 3조 원씩 늘어나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지방채를 발행해 모자란 돈을 메우면 나중에 교육청이 파산할 수밖에 없다. 내국세의 20.27%로 고정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을 포함해 따로 협의 기구를 만들어 탄력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홍찬식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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