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큰형님, 15년간 노숙인 챙기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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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감으로 승진해 서울역파출소 떠나는 장준기 경위

서울역 노숙인의 ‘대부’로 불리는 장준기 경위가 15년간 근무했던 서울역파출소를 떠난다. 경감으로 승진한 장 경위가 서울역을 떠나기에 앞서 9일 서울역 앞 노숙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역 노숙인의 ‘대부’로 불리는 장준기 경위가 15년간 근무했던 서울역파출소를 떠난다. 경감으로 승진한 장 경위가 서울역을 떠나기에 앞서 9일 서울역 앞 노숙인들과 얘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역 지하도의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한 노숙인을 매일 아침 찾아와 몸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뜨면 덩치 큰 경찰이 시야에 들어왔다. 2000년 7월부터 서울 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에 근무해온 장준기 경위(53)였다. 그가 지하도에서 청소 아주머니를 도와 노숙인을 깨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왜요? (단속) 건수 잡으러 왔어요?”

노숙인은 경찰을 싫어했다.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하거나 기소중지된 수배자를 찾으러 온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잡아가려는 게 아니라 도우러 온 거예요.”

무작정 단속하고 계도하는 게 능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친해지면 미안해서라도 사고를 못 칠 것 같았다. 장 경위는 노숙인과 소통하자는 생각에 늘 먼저 말을 걸고 주변 쓰레기를 치워줬다. 애로사항을 들어주면서 해결법이 있으면 안내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2년쯤 지났을까, 노숙인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그를 ‘큰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장 경위는 서울역에서 돌봐온 ‘동생들’의 곁을 좀처럼 떠나지 못했다. 2003년에 다른 파출소로 발령받아 근무할 때도 서울역에 와서 그들을 돌봤고 1년 만에 다시 서울역파출소로 돌아왔다. 그렇게 총 15년을 근무했다. 8년 전쯤부터는 매주 금요일마다 노숙인에게 무료로 이발을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를 거쳐 간 노숙인은 약 1500명. 이 중 일부는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특히 노숙인 김모 씨(2013년 사망·당시 46세)와의 인연은 잊을 수 없다. 알코올의존증이 심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었다. 장 경위는 그를 목욕시켜 주면서 각별한 추억을 쌓았다.

김 씨는 막걸리를 마시다 다른 노숙인을 폭행했고, 구속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소를 2, 3개월 앞둔 2013년 그는 폐암으로 형 집행정지를 받아 병원에 입원해 산소호흡기를 써야 했다. 보고 싶어서 찾아가자 김 씨는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마시고 싶다”고 했다. 김 씨는 “마지막으로 형님이 사주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장 경위는 얼른 매점에서 물을 사서 건넸다. 김 씨는 기쁜 표정으로 벌컥벌컥 마셨고, 다음 날 숨졌다.

노숙인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노숙인 김모 씨는 50대가 되도록 자신의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길바닥을 전전하며 살아왔다. 7세 때 경남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엄마를 잃어버린 뒤부터였다. 장 경위는 동사무소, 구청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수소문해 호적을 만들어줬다. 김 씨는 그렇게 새로 생긴 ‘한양 김씨’의 시조가 됐다.

장 경위는 8일 정기 심사승진에서 경감으로 승진해 다음 달 서울역파출소를 떠나게 됐다. 15년간 곁을 지킨 노숙인들에겐 아직 작별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는 “괜히 소문낼 필요는 없어서 말을 안 했는데, 임박해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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