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서울 도봉소방서에서 근무하던 경광숙 씨(58)는 뉴스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를 접했다. 구조대원이었던 경 씨는 사고현장에 파견되지도 않았지만 자책감에 시달리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치료까지 받았다. 무력감에 짓눌리던 경 씨는 34년 7개월간 몸담았던 소방서를 그만뒀다. 이후 새 직장인 CJ그룹 안전경영실 안전감독관으로 일하던 경 씨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아이들이 현장학습을 갈 때 함께할 안전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혹시 참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 씨는 그 자리서 “예”라고 대답했다. 학생들을 위한 일이라는 취지에 CJ그룹도 흔쾌히 일을 승낙했다. 경 씨는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재난현장에서 쌓은 30년 노하우를 학생들을 위해 쓸 기회가 생겨 정말 기쁘다”며 웃었다.
서울지역 퇴직 소방관들이 학생 안전을 위해 다시 현장으로 나선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북부교육지원청은 도봉, 노원지역 퇴직 소방관으로 구성된 ‘북부 교외활동 안전단’을 창설하고 26일 발대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화재, 구급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전직 소방관 17명이 뭉쳤다. 평균 나이는 59∼61세. 다들 최소 30년 이상 소방 일에 몸담았던 이들이다.
지원청이 안전단을 만든 이유는 최근 부쩍 늘어난 교외활동 때문. 자유학기제, 진로체험 등이 모두 현장학습 등의 교외활동을 포함하고 있다. 교사가 애를 써도 학생 수백 명을 통솔하기 벅차고, 행여 사고가 터지면 속절없이 구조대를 기다려야 한다. 지원청은 관할 소방서와 머리를 맞댄 끝에 퇴직 소방관들의 노하우를 살려 안전단을 만들었다.
안전단은 3월 새 학기부터 관할 초등학교나 중학교가 요청하면 교외활동에 동행한다. 이들은 모든 안전 위협요소를 사전에 차단한다. 가령 눈비가 심한 날에는 수학여행 버스가 사고 다발지역을 피해 우회로로 가도록 지시한다. 학생 숙소도 미리 방문해 소화기가 있는지, 비상구는 어디인지, 완강기는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사고가 터지면 제일 먼저 현장에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거나 구조활동에 착수하고 비상연락망을 동원해 관계기관에 구조를 요청한다.
올 초 노원소방서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한 장인수 씨(60)는 안전단 단장을 맡았다. 안 씨는 “지난해부터 안타까운 사고로 학생들이 다치고 숨지는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현역을 떠났지만 또 다른 형태로 능력을 발휘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피가 끓고 있다”고 말했다. 북부교육지원청은 “취지에 공감하는 퇴직 소방관들이 있으면 안전단 규모를 계속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