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에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모였다. 각계각층의 자원봉사자들이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문제를 상담해주기 때문이다. 2010년 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던 한진희 씨(35)도 업무 경험을 살려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는 무료상담을 시작하며 이주민들의 삶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돈 주고 (신부를) 사왔는데….” 어느 날 한 씨는 외국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결혼중개업체에 비용을 치르고 ‘속성 결혼’을 한 남성 중엔 이처럼 아내를 ‘돈 주고 사온 물건’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내에게 수시로 언어폭력을 행사하거나 심지어 외출까지 막는 사례도 있었다. 서로 잘 알지 못하고 결혼한 까닭에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반면 결혼 전부터 배우자 나라의 언어를 배우며 준비한 부부일수록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당시 국내의 다문화 관련 단체는 결혼 이후 가정생활에 도움을 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다문화가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는 거의 없었다. 한 씨는 이런 단체를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2013년 9월, 한 씨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비영리단체인 ‘신다문화공헌운동본부’를 만들었다. 한 씨는 사무국장을, 자원봉사 때 만난 한민이 씨(37·여)는 대표를 맡았다. 우선 재능기부자를 초빙해 충남 부여군과 경기 안산시 등을 돌며 무료 강연을 열었다. 교육 외에도 국제결혼 준비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두 사람은 아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베트남 관련 한국 기업들의 문을 두드려 4곳의 후원을 받아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바로 ‘1500쌍의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만들겠다는 것. 이름은 한국과 베트남(월남)의 이름을 따 ‘제1회 한월 행복프로젝트’라고 붙였다.
이들은 상담과 교육뿐 아니라 이른바 ‘맞선 모니터링’을 해준다. 업체를 통해 맞선 과정을 촬영케 한 뒤 혹시 통역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또 현지에서는 신부뿐 아니라 부모와 현지 중개자도 ‘사기나 위장 목적의 결혼이면 책임을 진다’는 동의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입국 후에는 부부교육을 실시한다.
이들의 목표는 다문화가정과 관련해 사기 위장 폭력 같은 단어가 사라지는 것. 이들은 “문제가 있는 다문화가정과 행복한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다문화가정이 잘살 수 있도록 준비 단계에서부터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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