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9)의 연인 겸 혁명 동지였던 나탈리아 레부엘타(사진)가 지난달 28일 폐질환으로 숨졌다. 향년 90세.
‘나티(Naty)’란 애칭을 지닌 레부엘타는 자신의 비상금과 보석 등을 처분해 카스트로의 혁명 자금을 댔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겸비해 ‘쿠바의 연인’으로 불렸다. 카스트로와의 사이에 딸 알리나 페르난데스(59)가 있다.
레부엘타는 1925년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 부모가 이혼했지만 어머니가 쿠바 재력가와 재혼한 덕에 당시로는 드물게 미국 유학을 포함한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는 22세 때 20세 연상의 심장 전문의 오를란도 페르난데스와 결혼했다. 남편은 병원 일로 늘 집을 비웠고 그는 골프와 요트클럽, 파티를 전전하며 무료함을 달랬다. 이런 그를 사로잡은 사람이 바로 젊은 혁명가 카스트로다. 1952년 지인 소개로 그를 만난 레부엘타는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한 상태였지만 둘은 틈만 나면 밀회를 즐겼다.
1953년 몬카다 군 기지 습격에 실패한 카스트로가 투옥됐다. 레부엘타는 그를 위로하려고 사랑의 밀어(密語)가 담긴 편지, 책, 두 사람이 거닐던 해변의 모래 등을 소포로 보냈다. 카스트로도 ‘당신을 생각하니 내 몸이 불타오르는구려. 계속 편지를 보내줘요. 난 당신의 편지 없이는 살 수 없소’라며 뜨거운 답장을 보냈다.
1955년 출소 직후 부인과 이혼한 카스트로는 계속 레부엘타와 만났다. 하지만 그가 혁명 준비로 바빠지자 레부엘타는 카스트로에게 임신 사실을 숨겼고 1956년 3월 딸 알리나를 몰래 낳았다.
1959년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을 즈음부터 그의 사랑이 식었다. 카스트로는 레부엘타를 멀리했고 알리나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해 남편과 이혼한 레부엘타는 재혼하지 않은 채 죽을 때까지 쓸쓸히 살았다. 카스트로는 알리나가 열두 살이 되자 뒤늦게 자신의 딸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부녀 사이는 나빴고 알리나는 37세 때인 1993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레부엘타는 2008년 한 인터뷰에서 카스트로와의 사랑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개인의 삶보다 혁명을 우선시한 것을 원망하진 않는다. 다만 내 마음에서 그를 지우는 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