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논란의 군함도 세계문화유산 등재 위해 14년간 투자… 우리는 반구대 암각화 44년간 방치”
“일본의 비문화적 행동을 계기로 우리의 문화자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세계에 알릴 것인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초의 여성 문화재청장을 지낸 변영섭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64)가 최근 일본의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움직임을 두고 우리에게도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며 한 얘기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첫 문화재청장에 임명됐다가 같은 해 11월 물러난 뒤 사실상 첫 공식 인터뷰다.
강의를 위해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를 찾은 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일본의 움직임에 날 선 비판을 하기보다 “우리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자”고 강조했다. 일본이 징용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약 14년. 이에 비해 한국이 문화재를 지키고 알리는 데 들이는 노력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이다.
변 교수는 “한국은 국보로 지정된 국가지정 문화재조차 정부가 직접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가 ‘문화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그 대열에 당당히 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반구대를 그 예로 들었다. 1971년 발견된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는 가로 10m, 세로 3m가량의 암면에 다양한 동물의 형상과 사냥, 고래잡이 모습 등이 빼곡하게 새겨진 것이다. 보존 상태나 역사적 가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암각화로 꼽힌다.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온전히 보존된 암각화가 불과 수십 년 사이에 4분의 1이 훼손됐다. 암각화가 세상에 드러나기 6년 전 이곳에 만들어진 사연댐 탓에 큰비가 오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변 교수는 “한국 문화재의 ‘맏형’과 같은 반구대 암각화의 4분의 1이 훼손됐는데도 제대로 된 보존 계획이 없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조차 못 하는 것이 우리 처지”라고 말했다. 대통령선거 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공약했던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할 정도로 반구대에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식수 문제를 내세운 울산시와의 갈등이 이어지며 반구대는 여전히 ‘비운의 문화재’로 남아 있다.
현재는 암각화 보존을 위해 가변형 물막이(키네틱 댐) 설치 방안 사전 검증이 진행 중이다. 변 교수가 문화재청장 시절 국무조정실, 울산시와 함께 합의한 방안. 하지만 그가 설명한 합의의 배경은 알려진 것과 달랐다. 변 교수는 “암각화 훼손 없는 물막이 설치는 불가능한 것으로 공상만화 시나리오나 다름없다”며 “‘설치 불가’라는 결과가 나오면 댐 수위를 낮춰 보존하는 것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고 검증에 동의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스스로 문화민족이라 말하면서 반구대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나라 곳곳에 흩어진 유적지를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 유산’이라는 이름 아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준비해 온 일본의 모습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는 “새롭고 본질적인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상상력의 원천은 바로 문화”라며 “문화의 뿌리인 문화재를 지켜내는 노력이야말로 문화대국으로 가는 제대로 된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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