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군주를 알려면 그가 쓰는 신하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직언이 통용되지 않고 기회주의가 만연해 있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61·사법연수원 17기)은 19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 전 처장은 중국사를 집대성한 사기(史記)를 쓴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의 시각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조망한 ‘사마천 한국견문록’을 최근 펴냈다. 그는 중국 진(秦)나라 시골 선비 조량이 당대의 재상 상앙을 직접 찾아가 “과도하게 엄격한 법치로 민심을 잃고 있다”고 직언했던 예를 들며 지금 한국 사회에는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참모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 전 처장은 직언이 희귀해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법제처장 시절 겪은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놓았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법제처장에 취임한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말 위에서 나라를 얻었다고 해서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기 구절을 인용해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논리로 집권했지만 그 논리로 계속 통치할 수는 없다”며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했다가 주변에서 걱정 어린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이 전 처장은 직언만 놓고 보면 지금의 한국이 ‘도끼상소’가 빗발치던 조선시대만 못하다고 성토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별말은 없었지만 분위기만 봐도 한국 사회가 직언이 얼마나 막혀 있었는지 체감했다. 이후 국회에서도 교과서에 나올 법한 당연한 이야기를 했는데도 쓴소리를 하는 걸로 비치더라”며 씁쓸해했다.
이 전 처장은 한나라 고조 유방을 보좌해 대륙을 통일한 장량이 ‘권불십년(權不十年)’의 이치를 깨닫고 말년에 미련 없이 관직을 버리고 떠난 일화를 들면서 한국 정치인들은 노욕을 부려 존경받는 원로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수감 중일 때 구치소에 면회를 갔는데, 한 시간여 대화를 마칠 즈음 이 전 의원이 “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장남이 ‘이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쉬시라’고 했는데 그 말을 들을 걸 후회된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그는 “국회의원을 대여섯 번씩 해 70세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자리에 연연하다가 결국 공천을 못 받고 추하게 퇴장하는 정치인들에게 사기를 읽어볼 것을 꼭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마천 한국견문록’은 정치 사회뿐 아니라 경제에 대한 사마천의 통찰도 담고 있다. 이 전 처장은 부를 추구하는 건 사람의 본성이며 자기 처지에 맞는 부를 갖지 못하면 무능력한 거라는 사마천의 관점이 2000여 년 후의 서구 자본주의와도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마천의 경제관은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와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까지도 수용하고 있다”며 “사마천의 경제관을 분석한 책도 조만간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