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고령화 속도가 빨라요. 삶의 질 못지않게 죽음의 질을 신경 써야 할 때입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71)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웰다잉(well dying)’ 전도사로 나섰다. 잘사는 것을 가리키는 웰빙(well being)의 마무리는 웰다잉으로 가능하다는 뜻에서다.
그는 올해 3월 발족한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운동본부’의 대표를 맡아 웰다잉의 필요성을 알리고 관련 법안의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치료가 힘든 말기 질환을 지닌 환자들에게 연명치료에 매달리기보다는 가족 등 소중한 사람과 함께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환경운동을 하다 나이가 들다 보니 자연스레 웰다잉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게도 곧 닥쳐올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우리 사회가 죽음에 관한 논의 자체를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제는 어떻게 죽는 게 삶을 잘 마무리하는 것인지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하는 시점이 됐죠.”
그는 ‘좋은 죽음’의 사례로 지난달 세상을 떠난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를 들었다. 색스는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피아노 치기, 편지 쓰기, 수영, 논문 마무리 등 하고 싶은 걸 모두 했다. 색스는 이런 활동을 통해 인생에 감사함을 지녔고 죽음을 긍정하며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했다.
반면 국내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병원의 차디찬 기계에 둘러싸여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죽는 이들이 태반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아픈 상태로 생을 마감하는 기간이 선진국보다 길다. 호스피스 병동 역시 삶을 편하게 마감하는 곳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 실제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0년 40개국에서의 죽음의 질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32위에 그쳤다.
김 전 장관은 “연명치료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환자가 죽음의 방식을 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웰다잉 논의는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말기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법’이 발의돼 있지만 해당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 7월부터 보건복지부가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더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호스피스 의료비 지원 대상이 뇌중풍(뇌졸중)과 치매 등으로 확대돼야 합니다. 고령자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35%(2013년 기준)를 차지하고 있어요. 관련 논의가 활성화되면 국가적으로도 의료비를 낮출 수 있겠지요.”
국민운동본부에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전윤철 전 감사원장,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김우식 전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김모임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성낙인 서울대 총장, 정갑영 연세대 총장, 염재호 고려대 총장, 이장무 KAIST 이사장, 강성모 KAIST 총장 등 총 1만40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80여 개 기관도 뜻을 같이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웰다잉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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