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개정판 펴낸 최영미 시인
“심신지쳐 한동안 절필도 생각… 詩수련생 열정보고 마음 잡아”
“손톱을 다듬는 마음으로 시집을 다듬었습니다.”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시인 최영미 씨(54)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비·이하 ‘서른, 잔치…’)의 개정판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서른, 잔치…’는 그의 첫 시집이다. 1994년 선보인 이 시집은 파격적인 시어와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시단과 독자들에게 강렬한 충격을 던지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누적 판매부수가 50만 부에 이르는 이 시집에 대해 “내겐 축복이자 저주이며 끝내 운명이 돼버렸다”고 했다.
말 그대로 ‘손톱을 깎아내듯’ 시인은 초판의 시편들에서 형용사와 부사들을 쳐냈다. 가령 ‘내 속의 가을’에선 ‘바람이 불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다’를 ‘바람이 불면 나는 가을이다’로, ‘나의 대학’에선 ‘이제 어쩌면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를 ‘이제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로 고쳤다. 표제시의 한 대목인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은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로 바꾸었다.
최 시인은 “30대에 쓴 시들을 보니 내 안에서 언어가 나오는 대로 다 쓴 것들이었다”면서 “시는 압축이 생명인 만큼 불필요한 수식어들은 덜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배 시인들을 만나면 ‘서른, 잔치…’에 대해 ‘뭘 모르고 쓴 거지?’라면서도 ‘시는 원래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쓰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뺄 건 빼더라도 가필은 안 했다. 지난 삶의 흔적을 고치겠다고 ‘성형수술’을 하려 들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표지는 붉은 바탕이 인상적이었던 마크 로스코의 작품 ‘회색 위의 빛’에서 제임스 휘슬러의 황갈색 회화 ‘성난 바다’로 갈아입었다. “30대의 분노와 절망을 나타냈던 것이 상처의 내면화가 담긴 이미지로 바뀐 것”이라고 시인은 설명했다.
지난해 소설 ‘청동정원’을 낸 뒤 오랜 창작활동에 지쳐 그는 한동안 절필을 생각했다고 했다. 올 초 관악구청의 ‘시 창작 교실’에서 강의를 맡으면서 그는 시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다. “엄마와 중학생 딸, 은퇴한 고교 교사, 고시생, 홀몸노인…. 시를 배우겠다고 곳곳에서 여러 분들이 모였어요. 시에 대한 그분들의 절실함에 제가 감동받았어요. 마음을 다잡고 시를 쓰는 계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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