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봉 길 한 발 한 발… ‘황 간호사 추억’ 털어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밀레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 길’]
‘용팔이’로 드라마 데뷔한 연극-뮤지컬 스타 배해선 수원 광교산 트레킹

배우 배해선 씨(오른쪽)가 지난달 27일 활짝 웃으며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 로프를 잡고 수원 광교산 형제봉을 오르고 있다. TV 드라마 ‘용팔이’에 출연하며 연기의 새로운 면을 느꼈다는 배 씨는 “자주 산을 오르며 저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다. 수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배우 배해선 씨(오른쪽)가 지난달 27일 활짝 웃으며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함께 로프를 잡고 수원 광교산 형제봉을 오르고 있다. TV 드라마 ‘용팔이’에 출연하며 연기의 새로운 면을 느꼈다는 배 씨는 “자주 산을 오르며 저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다. 수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연극과 뮤지컬 최정상 배우로 지난여름 화제가 된 TV 드라마에 처음으로 출연했던 배해선 씨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 낯설다. 20%대 시청률을 넘나들며 끝난 SBS 드라마 ‘용팔이’에서 초반 흐름을 이끄는 황 간호사 역을 맡아 강렬한 연기력을 선보인 그였다. 황 간호사는 싸늘한 표정에 웃음을 잃어버린 캐릭터였다. 어떤 인물인지 소개도 없이 김태희가 맡은 여주인공을 거칠게 몰아치다가 때로는 미묘한 감정으로 어루만지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역할이었다.

김태희의 상대역이었던 탓에 주목도가 높았지만 실감 나는 섬뜩한 연기가 더해져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가 끝난 뒤 연극과 뮤지컬 배우 ‘배해선’으로 돌아간 그는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유명세를 치르며 새롭게 세상에 비춰지는 ‘배해선’과 만나는 중이다.

아직 그는 배고픈 배우다. 근사한 밴보다는 버스와 택시가 여전히 편하다. 어디서라도 주변 신경 안 쓰고 주전부리를 허겁지겁 입에 넣는 여자다. 허세를 부리지 않게끔 연기 인생을 지켜준 이런 습관만큼은 아무리 유명해진다 해도 잃고 싶지 않단다.

연기에 입문한 지 20년 만에 무대를 바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한 그가 지난달 27일 아침 일찍 택시로 수원 광교산을 찾았다. 평소 산을 자주 오른다는 그는 형제봉과 토끼재를 잇는 9km를 걸으며 연기자 ‘배해선’이 누구인지 해답을 찾고자 했다.

○ 내 안에 못난 것이 가득… 연기자로 ‘못난이 운동’은 성공했다

경기 수원시 경기대 수원캠퍼스 홍보관과 예학관 사이 공터는 광교산 정상인 시루봉(582m)까지 가는 시작점이다. 이른 아침 삼삼오오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찾는 학생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구름 낀 날씨를 걷어냈다. 배 씨는 배시시 밝은 웃음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드라마가 끝난 후 오랜만에 숨 한 번 크게 쉬고 웃어 본다고 했다. 시작부터 만난 오르막길에 우스꽝스러운 표정도 절로 나왔다. 아침부터 신경 쓴 헤어스타일을 바람이 쓸고 지나가도 좋았다.

‘용팔이’의 황 간호사 연기를 본 시청자들은 유난히 표정에 주목했다. 드라마 홈페이지나 포털 사이트에 걸린 황 간호사의 주요 장면에 대한 댓글은 “기분 나쁘게 생겼다”, “재수 없는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등 배우이기 전에 차마 여자로서 듣기 민망한 감상평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배 씨는 그런 댓글이 감사하다. ‘악플’마저 기분 좋았다고 했다.

“기분 나쁘게 생기고 못생겼고… 그런 말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황 간호사라는 역할이 예뻐 보여야 할 배역은 아니었으니까요. 시청자들께서 제대로 연기를 봐 주셨다는 징표 아니겠어요? 행복했어요.”

황 간호사 연기에 대한 반응을 보며 비로소 연기자로서 위치 선정을 잘했다는 뿌듯함마저 들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저에게 구체적으로 ‘못난이 운동’을 하라고 주문을 내렸어요. ‘잘난 이’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연기를 했을 때는 실수도 용납하지 못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제가 못난이니까 실수해도 된다는 생각을 해요. 일부러 연기를 틀릴 때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연기를 하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즐기게 됐어요. 상대 배역이 리드하는 대로 연기를 끌려가보는 것도 되고요. 연기를 대하는 저 자신이 성숙해진 것 같아요.”

비록 드라마 8회에서 죽음으로 퇴장했지만 황 간호사의 잔상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꽤 오래 남았다. 드라마에서 때로는 무섭게 칼을 휘두르기도 했던 배역 이미지를 일상의 ‘배해선’으로 착각한 재미난 에피소드도 많이 겪었다.

“평소 여행을 갈 때 대본을 자르는 칼과 가위를 잘 포장해 가방에 넣고 다니는데 한번은 제주도를 가려가 공항 검색대에서 가방 안 칼과 가위가 걸린 거예요. 검색요원들이 저를 알아보고 당황하면서 회의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한 분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황 간호사처럼 실제로도 칼을 들고 다니시느냐’며 조심스럽게 회수해야겠다고 말하는데 속으로 ‘아, 드라마의 위력이 크긴 크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드라마 ‘용팔이’에서 황 간호사 역으로 강렬한 연기를 펼친 배우 배해선 씨가 광교산 숲길을 걸으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있다.
드라마 ‘용팔이’에서 황 간호사 역으로 강렬한 연기를 펼친 배우 배해선 씨가 광교산 숲길을 걸으며 주변 경관을 둘러보고 있다.
○ 데뷔 20년 만에 연기의 또 다른 이면을 마주하다

약수터를 거쳐 광교산 정상 아래인 형제봉과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은 큰키나무 일종인 물푸레나무가 즐비했다. 4, 5월과 여름 한창 꽃을 피우고 떨어진 낙엽들로 길은 온통 주황빛이다. 새벽에 내린 빗물을 머금고 밟을 때마다 소리를 내주니 길 걷는 지루함을 덜어 줬다.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지 20년째 되는 올해에 배 씨는 드라마 출연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연기의 새로운 면과 마주하고 있다. 그는 “남들은 연기가 진짜 같다고 말하는데 황 간호사 역할을 제가 어떻게 연기했고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 잘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다른 연기의 존재감을 실감했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악녀 황 간호사 역할을 소화하면서 연극이나 뮤지컬과는 다른 몰입을 가장 먼저 경험했다. 황 간호사의 불안증을 연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팔뚝을 피가 나도록 긁기도 했다.

“극에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없는 배역은 처음 해봤죠. 그 점을 몰입에 활용했던 것 같아요. 황 간호사의 미스터리함과 내면의 갈등을 극에서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뭔가 뉘앙스로는 풍길 수 있지는 않을까. 연기만의 내재율(시에서 겉으로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언어 배치 등을 통해 은근히 느끼게 하는 운율)로 조금씩 심리 상태를 풀어냈던 게 더 호기심을 줬던 것 같아요.”

드라마 데뷔는 연기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줬다. 그동안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사물을 지향점으로 바라보고 연기를 했다. 연극에서는 몸의 에너지를 어느 순간 크게 폭발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달랐다. 배 씨는 “제 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카드 중에 한 장이 추가된 느낌이고 작품 공부의 방향이 하나 더해진 것”이라며 “드라마는 카메라 앞에서 응축된 연기로 간결하게 사실을 전달하기 때문에 어려웠다”고 말했다.

드라마 출연으로 작품이 만들어지는 편집과 제작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기도 했다.

“어떤 시각을 갖고 편집을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는 걸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장에서 저의 캐릭터를 좋아하고 옆에서 도와주는 조명사 등 스태프들의 배려마저도 작품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어요.”

○ 물 같은 배우

토끼재에서 하산하는 길 주변은 물 천지다. 산과 숲이 물과 만나는 지점이다. 좌우로 절터약수터와 백년약수터, 천년약수터가 있다. 트레킹의 마지막인 상광교 버스 종점까지 내려가는 길 중간에는 계곡의 급류가 산기슭을 깎고 자갈과 토사를 밀어내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사방댐이 있다.

배우로서 배 씨의 신념은 물 같은 배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토요일 밤의 열기’ ‘맘마미아’ ‘시카고’ 등 대형 뮤지컬 작품의 주연으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물=배우’라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고 했다.

‘용팔이’에서도 국민 모두가 예뻐하는 김태희의 외모, 성격, 표정까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연기를 했다는 그녀다.

“배우는 물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세숫대야에 받은 물일 수도 있고, 주전자 안에 든 물이 될 수도 있고…. 물은 상황에 따라 조용히 모습을 바꾸잖아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잘 대처하자는 신념의 상징이죠.”

황 간호사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다른 배역을 소화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도 배우가 물이라는 생각 앞에서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단다. 그는 “‘이전 역할과는 다르게 연기를 보여 줘야지’라는 부담감보다는 자유로운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즐거움을 먼저 떠올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물과 같은 연기의 종착지는 공감대다.

“이 세상에 없는 독특한 배역을 맡더라도 어떠한 지점에서는 보는 사람들이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연기를 펼쳐 보이고 싶어요.”

○ 내 안의 감시카메라를 잊지 않겠다

배 씨에게 아버지와 이용한도 300만 원인 신용카드, 연극배우 박정자, 윤석화 씨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감시카메라 같은 존재다. 연기가 힘들고 때로는 흐트러지고 싶을 때면 떠올리는 존재다.

아버지는 배우인 딸을 줄곧 못마땅해했다. 배 씨는 못내 아쉬워 2002년 뮤지컬 신인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아쉬움을 토해 냈다.

“수상 소감을 말하다가 아버지가 한 번도 공연을 안 보셔서 마음이 아팠다고 했는데 나중에 아버지가 왜 남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냐고 서운해하셨어요. 두고두고 제 가슴에 오래 남은 아픈 기억인데 이제는 제가 연기를 하는 이유가 되어 버렸어요.”

20대 후반 연기가 잠시 싫증났을 때 그는 300만 원 한도 신용카드를 들고 무작정 영국과 프랑스를 찾아 미치듯 공연을 봤다. 거기서 좌절과 고통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걸 깨달았다. 대선배인 박정자 씨와 윤석화 씨의 연기를 보며 단 한 장면을 연기하더라도 등장하는 이유가 느껴져야 한다는 다짐을 마음에 새겼다.

트레킹을 마친 배 씨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작품 대본 연습을 할 수 있겠다며 광교산의 가을 단풍잎 한 장을 주웠다.

“몸 안에 안 좋은 것들을 다 배출한 것 같네요. 그렇지만 황 간호사의 악은 다 못 버려요. 버리면 안 돼요.” 광교산에서 연기자 ‘배해선’의 정취를 가득 느낀 배 씨는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들고 또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변덕스러운 겨울날씨… 방수-보온성 뛰어난 재킷 있으면 OK▼

겨울 산은 낮은 온도와 눈, 비를 동반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로 저체온증 위험이 있다. 이를 예방하려면 방풍, 방수력과 보온성이 뛰어난 옷을 착용해야 한다.
두꺼운 외투를 하나만 입기보다는 얇은 옷을 겹쳐 입어 외부 기온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방수 소재 외피 재킷과 보온 소재의 내피 다운재킷으로 이뤄진 스리인원(3IN1) 재킷(사진)을 추천한다. 내피로 입는 얇은 경량 다운은 움직임이 편하고 보온 효과를 준다. 외피 재킷은 바람과 수분을 차단해 체온을 유지해 준다.

밀레의 ‘델타 3IN1 재킷’은 탈착이 가능한 외피 방수 재킷과 내피 다운재킷이 세트로 구성돼 있다. 단독으로 입거나 겹쳐 입는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 외피 재킷은 강력한 방수 효과를 발휘하는 ‘드라이 에지(Dry Edge)’ 소재를 사용해 습기와 차가운 바람을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내피 재킷은 복원력이 우수한 오리털을 솜털과 깃털 9:1 비율로 혼합해 가볍고 따뜻하다. 소비자 가격은 여성용 58만9000원, 남성용 59만9000원이다.

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

수원=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용팔이#배해선#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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