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나 역사 인식 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가 생긴 것은 다행스럽습니다.”
5일 서울대에서 열린 ‘광복 70년, 한일수교 50년에 한일 관계를 다시 바라본다’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2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오랜 기간 냉각된 한일 관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전·현직을 막론하고 일본 총리가 서울대에서 강연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올해 8월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아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해 한일 양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당시 그는 형무소 곳곳을 돌며 11차례나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그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잃어버린 20년’으로 인해 자신감과 관대함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아베 총리가 올 9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가능케 한 안보 관련 법 제정을 추진한 것은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해 동북아에서 군사력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강제성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제도가 존재했다는 시스템과 윤리의 문제”라며 논점을 흐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꼬집었다. 또 “2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천황이 직접 침략의 역사를 사과하고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 등을 통해 사죄의 모습을 보였다”며 “최근 고노 담화를 검증한다는 등의 발언은 일본이 추구하는 평화와 민주주의가 아닌 편협한 내셔널리즘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진정한 ‘애국’이란 국가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 뒤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일본은) 더 이상 주변국에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자 청중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적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동아시아공동체 창설을 제안했다. 공동 통화를 사용하는 경제공동체뿐 아니라 각국의 분쟁을 해결하고 안전보장 문제 등을 논의하는 ‘동아시아평화회의’를 창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도 식민 지배로 고통받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강연 말미에 그는 “모든 역사적인 일은 ‘유토피아’ 같은 이상적 생각에서 시작한다”며 “그걸 현실로 만들지, 이상으로 끝나게 할지는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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