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강점인 기초과학과 소프트웨어(SW)가 한국의 과학기술 인프라를 만나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은퇴 시기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봄과 가을 학기마다 북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평양을 찾는 박찬모 평양과학기술대 명예총장(80·전 포항공대 총장·사진)을 17일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JW메리어트호텔에서 만났다. 박 총장은 “당장 통일은 어렵겠지만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북한 학생을 가르치는 이유도 통일 전에 남북의 과학기술 격차를 줄여서 통일 비용을 낮추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18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평양과학기술대학의 현황과 북한의 변화상’을 주제로 과학기술포럼 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남북 합작으로 설립된 평양과기대는 2010년 첫 입학생을 받았다. 불과 5년 만에 김책공대와 김일성대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찾아올 만큼 북한에서 명문대로 자리 잡았다.
“입학하면 영어를 가르쳐 주고 외국 유학 기회까지 열려 있으니 북한 학생들이 선망할 수밖에 없지요.”
북한 정부도 평양과기대의 실력을 인정해 이르면 내년부터 박사학위를 직접 주게 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해당 대학 대신 국가학위수여위원회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하지만 평양과기대 졸업생의 성적이 뛰어나다는 점을 감안해 북한 당국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현재 평양과기대에는 대학생 500명과 대학원생 87명이 합숙하고 있다. 남학생 일색이던 학교에 올해 4월 여학생 10명이 처음으로 입학했다.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있다. 14개국에서 온 80명의 교직원은 무보수로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박 총장은 “김정은 체제 이후 ‘과학기술에 의한 지식경제 육성’을 강조하면서 과학기술자의 지위가 높아졌다”며 “원격교육(먼거리교육) 체계가 마련된 것은 물론이고 최근 미래과학자거리와 함께 조성된 과학기술전당에서 김책공대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코 바뀌지 않는 것도 있다. 핵 개발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박 총장은 “북한은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사례를 보면서 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모란봉악단 철수와 같은 외교적 결례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과학기술 분야만은 정치적인 이유와 별개로 남북이 협력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현재 과학기술계에서 남북 교류 활동은 전무하다.
“지난해 7월 15일 출범한 대한민국 통일준비위원회에 과학기술 분과가 없습니다. 위원 중에 과학자도 없다는 걸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는 동서독 간 과학기술 협력이 꾸준히 이뤄져 통독 이후 동독 지역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토대가 됐다.
박 총장은 평양과기대가 남북 과학기술이 협력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방북을 불허하는 5·24 조치로 한국 국적 교수가 평양과기대에 갈 수는 없다.
“비무장지대(DMZ)에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소프트웨어 연구소가 세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경제 분야나 과학기술 분야에서 접촉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댓글 0